지난해 12월 2006학년도 수시2학기 논술고사를 실시한 24개 대학 가운데 6곳이 교육인적자원부의 논술 가이드라인(지침)을 벗어난 본고사형 문제를 출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인ㆍ적성 검사를 실시해 점수로 반영한 대학도 4개교가 적발됐다. 교육부는 21일 수시2학기 대학별고사 심의결과를 발표하고 본고사형 논술문제를 낸 6개대와 인ㆍ적성검사를 점수화해 반영한 4개대에 대해 개선을 요구했다. 교육부는 당초 위반의 경중에 따라 개선 요구 또는 개선 요구 및 제재 2단계 조치를 내리기로 했다가 이번에 한해 제재조치는 취하지 않기로 했다. ◇ 6개대 논술은 본고사 = 교육부 논술심의위원회 심의 결과 수시2학기에 논술을 치른 24개대 중 논술고사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고 기준을 벗어난 문제를 낸 대학은 고려대, 서강대, 울산대, 이화여대, 중앙대, 한국외국어대 등 6곳이다. 이들 대학은 제한된 범위 안에서 정답을 구하는 형태로 논술고사라기보다는 특정 교과의 지식을 평가하는 문제들을 출제했다. 고려대, 서강대 등은 수리 논술 등 자연계열 논술에서 수학과 관련해 풀이과정을 요구하는 문제를 출제했다. 한국외대는 국어로 된 지문이나 질문을 주고 답안을 영어 등 지원학과 언어로 작성하게 한 것으로 나타났다. ◇ 학력검사 위주 인ㆍ적성 검사 안돼 = 인ㆍ적성 검사를 단순 자격기준으로 활용하지 않고 점수화해 전형에 반영한 대학도 이번 심의에서 적발됐다. 논술 가이드라인으로 인해 논술고사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자 대학들이 편법적으로 인ㆍ적성 검사를 본고사 형태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다. 심의 결과 인ㆍ적성 검사를 학력검사 성격으로 치러 점수화해 전형에 반영한 대학은 인하대, 한성대, 한양대, 홍익대 등 4곳으로 나타났다. 이들 대학은 영어나 한문 등 외국어 능력을 측정하는 문제를 출제했거나 수학과 관련된 풀이문제, 맞춤법, 사자성어 등 단순 지식을 측정하는 문제 등을 낸 것으로 파악됐다. ◇ 영어 답안 요구도 본고사 = 교육부가 지난해 8월 말 공개한 논술고사의 개념은 '제시된 주제에 관하여 필자의 의견이나 생각을 논리적으로 서술하도록 하는 시험'이다. 다시 말해 주어진 지문 등에 대한 이해력, 분석력, 비판적 사고력, 사고내용에 대한 논리적 서술력 등 종합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평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논술고사에 해당하지 않는 본고사형 문제 유형은 ▲답안이 단답형 또는 선다형으로 되어 있는 경우 ▲단순히 국어ㆍ영어ㆍ수학 등 특정교과의 암기된 지식을 측정하는 것 ▲ 수학 과학과 관련한 풀이의 과정이나 정답을 요구하는 경우 ▲외국어로 된 제시문의 번역 또는 해석을 필요로 하는 문제 ▲질문을 해결해 가는 과정보다는 정형화된 하나의 답을 요구하는 경우 ▲고교 교육과정 수준 이상의 지식수준을 요구하는 문제 등이다. 이러한 가이드라인에 따른 첫 심의 결과 교육부는 외국어 제시문 불허는 물론 국어 지문이나 질문을 주고 답안을 영어로 작성하는 것도 본고사 범주에 추가했다. 또한 인ㆍ적성 검사에서 영어나 한문 등 외국어 능력을 측정하는 문제나 수학과 관련된 풀이문제, 맞춤법, 사자성어 등 단순지식을 측정하는 문제 등도 사실상 본고사형 문제로 지적됐다. 심의위원들은 이밖에 어려운 한자는 한글을 병기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제한된 시간내에 서로 상관관계가 없는 문제를 지나치게 많이 출제하는 경우도 충분한 사고과정을 거치기 어려워 종합적인 사고력과 창의력 등을 평가하려는 논술고사의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라는 소수의견도 제시했다. ◇ '송방망이' 징계 = 논술고사 기준을 벗어난 것으로 판단된 6개대에 대해 교육부는 심의위 지적사항을 통보하고 개선을 요구키로 했다. 당초 문제가 제기된 대학에 대해 논술고사 기준을 벗어난 정도의 경중에 따라 개선요구, 개선요구 및 제재 등 2단계로 결과를 통보하도록 돼 있었으나 교육부는 이번에 한해 모든 대학에 대해 위반의 경중에 구분없이 제재는 하지 않고 개선을 요구하는 선에서 일단락짓기로 했다. 논술고사 기준을 발표했을 시점에 이미 상당수 대학이 논술 유형을 수험생들에게 공지한 상태였기 때문에 대학들이 사전예고한 내용을 변경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교육부는 설명했다. 그러나 교육부가 지난해 8월 논술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도 몇몇 대학의 본고사형 논술에 대해 `면죄부'를 줘 온정주의적이라는 비판과 함께 유사사례를 부추길 것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적이 있어 교육부가 대학들을 지나치게 봐주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교육부는 2006학년도 정시모집 논술에 대해서도 심의를 벌여 단호히 대처하고 2007학년도에도 논술고사가 본고사 형태로 치러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 가이드라인 지켜질까 = 대학들은 교육부의 논술가이드 라인 자체에 대해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못마땅해 하고 있다. 교육당국이 대학의 논술 시험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 자체가 `웃기는 발상'이라는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대학들은 일단 교육부의 행 재정적 제재라는 엄포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지침을 따르고 있지만 결국 수학능력시험과 학생부 이외에 변별력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가이드라인을 피한 다양한 형태의 대학별 고사에 기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에 4개대가 적발된 인ㆍ적성 검사를 학력검사 식으로 바꿔 점수화한 것이나 상당수 대학들이 증거가 남지 않는 구술이나 면접 고사를 대폭 강화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점은 대학들의 편법적인 대학별 고사 경향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서울지역 모대학의 관계자는 "대학들 입장에서는 우수학생을 뽑기 위해 무슨 수라도 쓰려고 한다"며 "결국 교육부 논술 가이드라인의 경계선에 있는 대학별고사가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성한 기자 ofcours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