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ㆍ관ㆍ법조계 고위 인사들로부터 의문의 돈 수천 만원씩 받아 챙긴 희대의 거물 브로커 윤상림씨의 엽기 행각에 조사를 맡은 검사와 수사관들이 할 말을 잃었다. 증거를 토대로 혐의를 확증하는 의무가 전적으로 검찰에 있는 만큼 윤씨의 입을 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윤씨는 초지일관 조사에 비협조적으로 응하고 심지어 온갖 `방해 전략'을 구사하면서 검사들의 진을 빼고 있기 때문이다. 윤씨의 엽기 행각은 검찰 조사 초기 단계에서는 단순히 허풍선이 수준이었으나 수사가 상당히 진척되자 이제는 광인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윤씨는 최근 조사를 받기 위해 검사실 밖에서 기다리다 직원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검사실에 슬그머니 들어가 수작을 걸었다. 검사에게 다가간 윤씨가 책상에 있던 탁상용 달력을 집어들고 숫자 몇 개를 가리키며 "검사님, 이 숫자들에서 전화벨이 울립니다"라고 했다는 것. 윤씨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자 담당 검사는 불리한 사실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수사와 무관한 부분만 골라서 얘기할 정도로 정신 상태가 멀쩡한 사람이 갑자기 미친 척하자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윤씨의 엉뚱한 수사 방해 전략은 상황이 진전되는 단계마다 다양하게 변해왔기 때문이다. 구속 초기 윤씨는 고위 인사들과 친분을 자랑하며 살기 어린 눈으로 "판을 엎어버리겠다"고 수사팀에 으름장을 놓기 일쑤였다. 검찰은 이런 윤씨를 `우리에 갇힌 맹수'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맹수'의 살기가 사그라지기 무섭게 윤씨는 갖가지 기행을 보이는 `전략'을 구사했다. 윤씨의 엽기 행각은 검찰에 체포될 때부터 시작됐다. 지난해 11월 김포공항 주차장에서 체포될 때 대로로 도망치다가 수사진에 붙잡히자 바닥에 쓰러져 정신을 잃은 척하다가 의사의 간단한 확인 작업으로 `꾀병'임이 들통났다. 또 지난달에는 밤에 조사를 받다가 벽에 머리를 들이받고 바닥에 드러누워 검찰이 고문을 하고 있으니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고래고래 고함을 치기도 했다. 새로 옮긴 구치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검찰 출석을 거부하는가 하면 `칭기즈칸'과 `전국노래자랑'을 봐야한다며 TV를 설치해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 조사 받다 화장실에 자주 가는 것도 윤씨가 자주 쓰는 전략. 윤씨는 신앙심에 호소하는 방법도 썼다. 검찰 직원에게 받은 성경책을 품에 안고 다니며 조사 도중 민감한 질문이 나오면 돌연 `할렐루야'를 외치는 식이었다. 검찰 관계자는 윤과 관련된 진술 내용을 확인하려는 기자들에게 "그 정도라도 말해주면 고맙지. 여전히 `할렐루야'만 찾고 있다"며 조사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까 윤씨는 바깥 세상에서 고위 인사들과 호형호제하면서 수십 억원을 끌어모은 거물 브로커로 행세했지만 검찰에서는 온갖 유치한 수단으로 수사의 맥을 끊으려 하는 `엽기남'으로 통한다. 하지만 검찰은 윤씨를 둘러싼 의혹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음에도 윤씨의 이러한 기행 때문에 수사 속도가 더디게 진행되자 행여 `표적수사' 등의 오해를 받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검찰은 일단 다음주 윤씨의 범죄사실 몇 가지를 정리해 추가 기소한 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그와 관련된 온갖 비리 의혹을 낱낱이 파헤쳐 관련자들을 예외없이 엄단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조성현 기자 eyebrow76@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