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김기설씨 분신자살 사건에 대해 검찰이 사건 발생 당일부터 `유서 대필'로 미리 결론을 내려 두는 등 무리하게 수사를 진행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했다. 위원회는 이날 중간조사발표를 통해 "김씨 분신 사건 당일 작성된 압수조서에 김씨의 동료 강기훈씨가 자살방조 피의자로 특정돼 있는 점으로 보아 검찰이 애초부터 미리 결론을 내 놓고 이에 맞춰 무죄 증거를 배척한 것 아니냐 하는 의심이 든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검찰이 공개를 거부하고 있어 유서 원본에 대한 필적 감정이 이뤄지지 못했으나 당시 감정이 객관적이고 공정하지 않았다는 의문이 있다"며 유서의 필적이 당시 검찰 수사 발표와 달리 사망한 김기설씨 본인의 것으로 보인다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당시 감정을 의뢰했던 검사와 필적 감정을 맡았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 직원이 `어떤 감정 결과를 원하느냐'에 대해 전화통화를 했던 사실과 검사와 검찰 직원이 `감정 문건에 대해 설명하겠다'며 직접 국과수를 방문했던 사실도 확인됐다. 사회 상규와 수사 관행에 어긋나는 이러한 행위는 필적감정에서 요구되는 중립성, 객관성, 독립성을 심대하게 훼손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위원회는 지적했다. `유서대필 사건'이라는 명칭으로 널리 알려진 김기설씨 분신자살 사건은 1991년 5월8일 서강대 건물 옥상에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국 부장 김기설씨가 노태우 정권 퇴진을 외치며 분신하자 검찰이 김씨의 전민련 동료 강기훈씨가 유서를 대신 써주며 자살을 방조했다고 발표, 논란이 제기됐던 사건이다. 당시 검찰은 국과수의 필적 감정을 결정적 근거로 강씨를 기소해 유죄 판결을 받아냈으나 재야 운동권 등을 중심으로 조작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당시 감정 결과를 내놓은 김모 전 국과수 문서분석실장은 다른 사건과 관련해 허위감정을 해주고 돈을 받은 혐의(뇌물수수)가 드러나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경찰청 과거사위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1984년 `서울대 민추위 깃발 사건' 및 1983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사건에 대한 중간조사결과도 함께 발표했다. 위원회는 이 두 사건에서 수사기관이 고문 및 가혹행위를 자행했으며 관련자들을 좌경용공분자로 몰아 민주화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안기부, 검찰, 보안사 등이 협의해 개입, 수사결과를 조작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특히 당시 민청련 의장이던 김근태 현 보건복지부 장관에 대한 고문이 당시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장의 지시로 이뤄졌다는 진술을 당시 고문을 자행한 수사관들로부터 받아냈다. 위원회는 중간조사결과를 발표한 3개 사건과 이미 국정원에 의해 조사 결과가 발표된 민청학련 사건 이외에 `자주대오 사건', `남민전 사건', `46년 10월 대구 민간인 사살 의혹사건', `보도연맹원 학살 의혹사건', `나주부대 사건', `진보의련 사건' 등에 대한 조사를 내년 2월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다. 위원회는 내년에는 불법 선거개입 의혹, 민간인 사찰 의혹, 용공조작 및 고문의혹 등에 대한 조사에 주력키로 했다.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solatid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