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고속도로 영주IC에서 빠져나와 자동차로 국도를 타고 20분가량 더 달려 만난 경북 봉화읍.지난 20일 찾은 이곳은 가을걷이가 거의 끝난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겉보기에는 평화롭기만 했다. 하지만 이 마을 주민들은 내부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국제결혼 가정의 증가에 따라 동남아국가 출신 어머니 밑에서 가정 및 학교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어린이가 늘어나면서 각종 사회문제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촌 총각 3명 중 1명이 국제결혼을 하는 다민족 문화시대를 맞아 국제결혼가정 2세 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우리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이 마을에서 한 절도사건이 발생했다. 초등학교 2학년인 K양이 친구집에서 100만원을 훔쳤다. 비록 돈을 회수하는 등 사건은 마무리됐지만 그 파장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돈을 훔친 K양은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인은 한국말을 못하는 태국 출신 엄마로부터 제대로 된 가정교육을 받지 못한 데 있었다. 미화원인 아버지는 일에 쫓기다 보니 4명의 자녀들은 거의 방치된 상태로 양육돼 왔다. K양의 담임 교사인 강 모씨는 "아이가 엄마와 의사소통이 전혀 안 돼 집에서 기본적인 가정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신영숙 봉화교육청 장학사도 "국제결혼 2세들은 기초학력뿐만 아니라 도덕성·사회성도 길러지지 않아 동급생 사이에 집단따돌림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 같은 국제결혼가정 2세가 늘어나고 있는 데도 정부 차원의 대책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데 있다. 현재 경북지역에만 외국인 주부 수가 1600명에 육박하고 있다. 봉화지역의 경우 현재 공식적으로 67명의 외국인 주부가 살고 있고 이들 자녀 37명이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학생 수는 계속 늘어나 내년 80명,2007년 100명을 훨씬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경북 북부지역 국제결혼가족모임 회장인 권오복씨(43·경북 예천)는 "한국인 신부를 구하지 못한 농촌 총각들이 결혼하기 위해서는 10만명의 외국인 신부가 더 필요하다"며 "앞으로 국제결혼가정의 2세들도 급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각 지자체도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경상북도는 내년 신규 사업으로 가정폭력피해 외국인 주부를 대상으로 대모제도,외국인 주부 한글교실,행복만들기 부부캠프 등을 추진하고 있다. 각 시·군들도 교양,어학,제빵 등 교육 프로그램을 비롯 동남아 여성들을 위한 각종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하고 있다. 정일선 경북여성개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외국인 주부와 아이들의 언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객관적인 기초자료조차 수집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기초자료 수집 등을 포함해 중앙정부 차원의 종합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북지역의 한 초등학교 김 모 교장은 "이들 2세가 아직 어려 큰 문제가 되고 있지 않지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성인이 되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며 "얼마 전 프랑스에서 일어난 인종폭동을 보면서 앞으로 10~20년 뒤 한국에서 일어날 일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했다"고 말했다. 봉화=신경원 기자 shi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