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유전의혹' 사건 선고공판에서 김세호 전 건교부 차관과 왕영용ㆍ신광순씨 등에게 징역 2년∼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함으로써 일단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경영적 판단에 따라 러시아 유전개발에 참여했다는 왕ㆍ신씨의 주장과 달리 사업성이 부족한 데다 실사도 없이 사업을 추진한 것은 명백히 회사에 손실을 끼치는 범죄라는 검찰 논리에 공감하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재판부는 또 유전사업 추진 과정에서 왕씨 등이 정ㆍ관계측 지원 등 `외부적 요소'에 기대를 건 나머지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했다는 점을 인정함에 따라 2개월여간 답보상태를 보여온 `유전의혹' 특검팀이 수사를 계속할 근거를 확보하게 됐다. ◇ 철도공사 간부들 `배임' 인정 = 배임 혐의는 무리한 사업진행 결과 지난해 10월 계약금 620만달러를 러시아 알파에코사에 송금한 점과 같은해 9월 페이퍼컴퍼니인 코리아크루드 오일(KCO) 주식을 고가인 120억원에 매수한 부분으로 나눠진다. 공판과정에서 왕ㆍ신씨는 `경영적 판단'에 따라 사업을 추진한 만큼 고의가 아니었다는 주장을, 김 전 차관은 이들에게 사업을 검토해 보라고 했을 뿐 추진을 적극 지시하지 않았다고 항변하며 줄곧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전문기관의 보고서를 무시한 채 현지법상 청산돼야 할 정도로 사업성이 떨어지는 페트로사흐 유전인수 사업에 참여한 것은 부채 때문에 안정적인 수익사업이 필요한 철도공사에게 손해를 안길 것이 분명했다"며 배임죄를 인정했다. 계약금 송금에 대해서는 재판부는 "현지조사를 다녀온 철도공사 직원들의 부정적 의견에도 불구하고 실사도 없이 거액을 송금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피고인측 변론을 일축했다. 특히 공판 내내 `무죄' 주장을 펴 왔던 김 전 차관에게는 "수차례 유전사업 경과를 보고받았고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사업을 추진하라고 지시한 점 등을 볼 때 왕ㆍ신씨가 김 전 차관이 모르는 가운데 사업을 벌였을 리 없다"고 못박았다. 신ㆍ왕씨의 `KCO주식 120억 매수'는 철도공사가 합리적이지 못한 고가에 페이퍼 컴퍼니의 주식을 사들였다는 점에서 배임죄가 인정됐다. 이로써 검찰과 피고인측 변호사들이 불꽃 튀는 법정공방을 벌였던 유전의혹 사건은 1심에서 검찰측의 완승으로 끝난 셈이다. ◇"정ㆍ관계 `외곽지원' 기대했다"= 재판부는 김 전차관과 신ㆍ왕씨가 정ㆍ관계의 지원에 기대했다는 점을 유전사업 강행의 배경으로 지적해 이 부분이 유전의혹 특검 수사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외압 의혹과 관련, 왕씨가 작년 7월 김 전 차관에게 "이광재 의원이 추천한 사업"이라며 유전사업을 최초 보고했고, 다음달에는 신씨가 "대통령 방러의제에 포함되려면 결정을 서둘러야 한다. 일이 잘되면 김 전 차관이 대통령 수행원에 포함된다"는 왕씨의 보고를 받고 급히 유전사업 설명회를 개최했다는 대목이 판결문에서 주목된다. 또한 작년 8월 말 김 전 차관은 전라선 개량개통식에서 "사할린 유전을 인수할 것이다. 차표를 파는 것만으로는 안된다"고 말하고 보름여 뒤 국회 예결위에서 이희범 산자부 장관에게 "신 차장을 도와달라"고 부탁한 발언도 눈에 띈다. ◇`유전의혹' 특검수사 향배는 = 재판부가 유전의혹 사건 관련자들에게 배임죄를 인정함으로써 특검 수사는 사건 관련자들이 기대를 품었던 `정ㆍ관계 지원' 의혹의 실체를 밝혀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김 전 차관 등의 배임에 이광재 의원이나 청와대, 행정부처 관계자들이 동참했는지, 직권을 남용한 부분이 있는지를 조사하는 게 특검수사의 요체인 것이다 . 그러나 특검팀은 이미 청와대나 정부 부처의 사건 개입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 쪽으로 가닥을 잡은 점에 비춰 소기의 성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청와대 김경식 전 행정관은 지난해 9월 철도공사 서울사무소를 직접 찾아갔다는 의혹에 대해 특검 조사에서 신빙성 있는 `알리바이'를 제시한 상태여서 후속 수사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정태익 전 주러 한국대사가 코리아크루드오일(KCO)과 철도공사, 러시아 알파에코사의 3자 모임을 주선했다는 의혹도 핵심 증거로 여겨지던 `초청장'의 내용상 유전의혹 사건과 거리가 먼 것으로 밝혀졌다. 특검팀은 우리은행의 사업자금 650만달러 대출 과정과 관련해서도 대출 절차상 일부 문제점은 재확인했지만 외압이 작용해 빚어진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결국 특검팀의 수사대상은 이 의원의 사업개입 여부와 최근 확인된 전대월씨 비자금 1억여원의 사용처 정도가 남아 있다는 형국이다. 하지만 특검팀이 8월 16일 이후 두 달여 간 증거 확보에 전력 투구했지만 성과를 얻지 못해 이 의원과 전씨에 대한 조사에서 검찰 조사 내용을 바꿀 만한 단서를 확보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안 희 기자 prayer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