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LPGA투어프로 박세리 선수(28·CJ)가 손가락 부상으로 시즌을 중도 포기하고 7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편안한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으로 입국장을 나선 박세리는 팬들의 사인요청에 친절히 응해주는 등 한결 여유를 찾은 듯했다. 박세리는 마중나온 부친 박준철씨와 포옹한 후 공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나친 욕심이 슬럼프를 부른 것 같다"며 "미 LPGA투어 진출 이후 귀국하면서 골프채를 놓고 오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착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박세리는 이달 말 제주도에서 열리는 LPGA투어 CJ나인브릿지클래식이 끝날 때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귀국 소감은. "오랜만에 귀국해 좋다.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고 온 것 같았는데 이젠 마음이 좀 푸근해졌다. 고향이란 이래서 좋은가 보다." -왼손 가운데 손가락 부상 때문에 시즌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뜻하지 않은 일이었다. 마지막날까지 부상이 낫기를 기다렸으나 생각보다 완쾌가 더뎠다. 한국에서 선수생활을 할 때나 97년 이후 미국 투어에 몸담아 온 8년 동안에도 부상으로 시즌을 접은 적은 없었다. 답답하다. 그동안 쉬고 싶은 생각이 많았지만 막상 생각지도 않았던 부상으로 쉬게 되니까 더 힘들고 신경 쓰인다. 골프채를 놓으니까 시간이 정말 안 간다. 예전에는 하루하루가 너무 빨리 갔는데….병원에서 치료받고 헬스하는 것 말고는 하는 일이 없으니까 시간 보내기가 힘들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동안 시간을 참 알차게 보내온 것 같다.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면서 많은 것을 깨닫고 있다. 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친구나 팬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 느끼고 있다. 정말 이런 게 힘이 되는구나 하고 마음에 와 닿는다." -부상의 정도는. "손가락이 부어 있다. (박세리는 보호대를 빼서 손을 들어 보여줬다) 결과가 너무 천천히 나오는 것 같다. 이번에 MRI도 찍어볼 것이다. 의사도 치료를 계속하자고 한다. 미국 투어에서 뛴 뒤 귀국하면서 골프채를 놓고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골프채를 놓고 오니 어떤가. "허전하다.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번에 손가락을 다친 게 오히려 잘된 것 같기도 하다. 채를 잡을 수 없으니까. 손가락을 다치지 않았으면 또 골프채를 잡았을 것이다." -국내에 있는 동안 하고 싶은 일은. "절에 갈 것이다. 기(氣)도 좀 받고.바닷가 같은 곳으로 여행도 가보고 싶다. 새로운 마음가짐 같은 게 절실하게 필요하다." -왜 부진이 왔다고 생각하는가. "집착이었던 것 같다. 남들은 명예의 전당 입성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뒤 해이해지지 않았느냐고 하지만 오히려 목표를 달성한 뒤 또 다른 목표를 욕심냈었다. 여유 있고 짜임새 있게 목표를 준비하지 않고 너무 집착이 많았던 것 같다. 욕심의 끝이 없다 보니 이렇게 된 것도 같다." -데이비드 리드베터는 스윙이 변했다고 했는데. "스윙은 변하게 마련이다. 타이거 우즈도 더 잘 치려고 스윙을 고치지 않는가. 클럽도 수시로 바꾸고….편하고 무리 없는 스윙을 위해 꾸준히 연습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욕심이 너무 많았다. 2시간 정도 헬스를 하면 될 것을 4시간 동안 하곤 했다. 남이 하지 못한 기록을 세우고 싶은 욕심이 강했던 셈이다. 명예의 전당 입성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 나니까 자신감이 생겨 당연히 더 잘할 줄 알았다. 그러다 보니 한 번 실수를 용납하지 않았다. 이번 홀에서 못했으면 다음 홀에서 만회하면 되는데 왜 이런 샷을 했는지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골프 외에 다른 삶의 영역이 너무 없다는 지적도 있는데. "나도 그게 문제인 것 같다. 연습할 때는 연습하고 놀 때는 놀 줄 알아야 하는데….뭐하면서 놀고 쉬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늘 연습 1시간 할 것을 2시간씩 늘려서 하면 만족스러웠다." -지금이 가장 어려운 시기인가. "그렇다. 지난 2000년 시즌에도 우승을 못한 적이 있지만 그때는 슬럼프가 아니었다. 지금은 슬럼프라기보다 성숙되기 전 과정이 아닌가 한다. 시련을 통해 더 강해지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이제 나도 노장 소리를 듣는다. 앞으로 후배들에게 도움되는 선배가 되고 싶다." -미셸 위가 프로로 전향했는데. "미셸 위보다는 부모님이 결정한 것 같은데 너무 서두르지 않았나 싶다. 미셸 위는 훌륭한 선수다. 그러나 골프는 장기간 쳐야 한다. 프로는 아마추어 때와는 다르다. 미셸 위가 감당할 수 있도록 부모님이 잘 관리해줘야 할 것 같다." 한은구.강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