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 중수부가 5년 8개월의 해외 도피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범법행위 조사와 별도로 그동안 석연치 않았던 대우그룹 몰락의 비밀도 규명키로 해 수사성과가 주목된다. 김씨의 구속영장에 적시된 주요 혐의는 41조원대 분식회계와 10조원대 사기대출, 200억달러의 국외재산도피 등이지만 이들 혐의 규명은 대우그룹 전직 임직원들이 이미 대법원 확정판결을 통해 유죄로 인정된 바 있어 난제(難題)는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김씨의 갑작스런 출국과 귀국 배경, 대우그룹의 `몸집 불리기'와 급속한 해체과정, 그리고 김씨를 둘러싼 끊임없는 정관계 로비설 등은 DJ 정부 당시 고위관료들의 이름과 얽혀 지금도 여전히 국민적인 의혹으로 남아있다. 법리적으로는 김씨가 정치권에 거액의 불법 정치자금을 줬거나 DJ 정부가 김씨의 범죄사실을 알고도 해외로 출국시킨 사실이 확인되더라도 정치자금법 위반죄나 범인도피죄 등은 공소시효가 지나 관련자 처벌이 어렵다. 뇌물 수수 사실이 드러나면 공소시효가 아직 남아 있어 처벌할 수는 있지만 금품의 대가성을 규명하기는 그다지 간단치 않다. 최근 정치인들의 뇌물사건에서 줄줄이 무죄판결을 받은 것도 대가성 입증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과거의 범죄 의혹이 짙더라도 이처럼 사법처리 가능성이 희박하면 적극적인 수사 의지를 보이지 않았던 게 관행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대우그룹은 재계 서열 2위였던 만큼 몰락한 배경을 반드시 밝히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29일 "대우그룹이 몰락한 배경에 대한 국민적 의혹을 풀고가야 한다는 것이 김종빈 검찰총장의 의지다. 공소시효가 지났더라도 의혹은 풀어야 한다"고 밝혔다. 대우 분식회계 사건 당시 주임검사를 맡았던 대검 민유태 수사기획관도 "대우가 왜 망하게 됐는지 이번에 밝히지 못하면 앞으로도 진상을 밝힐 기회가 없을 것이다"며 수사의지를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검찰이 목표로 삼는 `대우사태 진상규명'을 위해서는 강력한 수사의지를 갖추는 것 외에도 넘어야 할 장애들이 첩첩산중이다. 대우그룹 해체과정 규명은 그룹이 어떻게 방만한 차입경영을 했고 회계사와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는 어떻게 작용했으며 이 과정에서 재무구조 악화와 자금흐름 경색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파악하는 작업에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거대 기업군의 특성상 이 작업은 결국 당시 정부를 배경으로 한 채권단과 경제정책 라인의 판단과 맞닿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검찰은 "정부의 정책판단은 일단 수사대상이 아니다"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검찰의 이런 판단은 IMF 외환위기와 관련해 기소된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와 김인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대법원에서 직무유기죄 무죄가 확정됐을 뿐 아니라 대우사태와 관련한 경제적 정책판단이 통치행위의 일환으로 진행됐을 수도 있다는 시각 때문이다. 김씨의 석연찮은 출국에 관여한 당사자들이 입을 열지 않거나 거짓말을 할 게 뻔해 보이는 상황에서 검찰이 관련자 진술을 이끌어 내고 진술의 신빙성을 검증하는 것 역시 쉬운 작업이 아니다. 장기간 해외를 떠돌던 김씨의 갑작스런 귀국이 현 정권과 모종의 교감 때문이 아니냐는 추론이 나오는 상황에서 검찰의 대우사태의 진실 재구성 작업이 권력의 힘과 또 다른 누군가의 속임수에 따라 왜곡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민감한 사안중의 하나인 `김우중 리스트'의 실체와 금품수수 과정은 법리적인 처벌 가능성을 떠나 국민 앞에 가장 구체적으로 내보일 수 있는 부분이지만 수사가 정쟁에 악용될 우려도 적지 않아 검찰로서는 신중할 수밖에 없다. 대검 중수부가 이처럼 `처벌할 수는 없지만 밝혀야 하는 것', `수사는 어렵지만 그냥 넘길 수는 없는 것'을 두고 어떻게 수사력을 집중해 국민적 의혹을 해소할 `작품'을 내놓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상희 기자 lilygardene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