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갔다. 이승의 근심 떨쳐내고 수정같이 맑은 하늘로 번지점프를 했다. 우울증 없는 하늘로. 지난 22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배우 고(故) 이은주의 장례식이 24일 치러졌다. 스물 다섯 불꽃같은 삶을 산 청춘은 불 속으로 들어가 한 줌 재로 나왔다. 그가 가는 날 하늘은 차갑고 맑은 얼굴이었다. 마치 생전의 그의 모습처럼. 오전 7시 빈소가 마련된 분당 서울대 병원 장례식장에서는 고인의 가족과 친지,동료 등 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 예배를 겸한 추모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설경구, 이병헌, 김지수, 김주혁, 바다, 지성, 전인권 등의 동료 연예인들과 차승재.김미희. 오기민, 김광수 등의 영화인들도 참석했다. 현장에는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명의의 조화가 눈에 띄었다. 이은주는 생전에 호스피스 홍보대사로 활동했다. 40여분간 비공개로 진행된 추모예배는 현대교회 조동천 목사가 진행했다. 조 목사는 이 자리에서 "은주는 몇년 동안 우울증이라는 병을 앓아왔다. 은주는 자살한게 아니라 질병과 싸우다 죽은 것이다"라는 말로 이은주의 죽음을 설명했다. 예배 후 취재진에게 공개된 추모식에서 배우 문근영은 영화인 대표로 추모사를 낭독했다. 문근영은 이은주와 같은 나무액터스 소속으로 설경구와 함께 영화인 추모단의 배우 대표를 맡았다. 선배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 듯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추모식장으로 들어섰던 문근영은 시종 울먹이며 추모문을 어렵게 낭독해 나갔다. "불꽃같은 열정 거두고 그 분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그녀는 진정한 영화의 연인이었습니다… 배우이자 영화인으로서 품었던 당신의 열정과 진정한 마음만은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이어 이은주와 각별한 사이였던 가수 전인권과 바다가 추모의 노래를 불렀다. 전인권은 영정을 바라보며 무반주로 '걱정말아요'를 불렀다.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바짝 말라있었고 검정 선글라스 아래로는 눈물이 쉼없이 흘러내렸다. 그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식장 안 여기저기에서 울음이 터져나왔다. 이은주와 혈육과 같은 정을 나눴던 바다는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불렀다. 울다 지쳐 차라리 초연해진듯한 모습이었던 그는"이 곡은 은주가 좋아했던 노래"라며 노래를 반복해서 불렀고 이에 맞춰 추모객들이 차례로 영정에 헌화를 하기 시작했다. 영화 '송어' 이후 선후배의 정을 쌓아온 설경구는 충혈된 눈으로 현장을 지켰고 김지수, 김민정, 도지원 등은 계속 흐느꼈다. 한 시간여의 추모식이 끝난 후 시신은 벽제 화장터인 '승화원'으로 옮겨졌다. 탤런트 김정현이 영정을 들고 김주혁, 박건형 등 소속사 동료 배우들이 운관을 맡았다. 의식이 진행되자 이은주의 가족들은 오열했다. 바다와 김정현은 넑을 잃은 표정이었고 김지수 역시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주홍글씨'의 파트너 한석규는 의식 도중 합류했다. 유골은 얼마 전 가수 길은정의 유골이 안치된 자유로 청아공원으로 12시 20분께 옮겨졌다. 이번에도 역시 김정현이 영정을 들었고 유골함은 이은주의 오빠가 운반했다. 현장에는 '이은주를 사랑하는 사람들' 이름으로 '불꽃처럼 살다간 당신 편안히잠드소서'라는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탤런트 김소연, 황인성, 정성화, 신은정과 한석규, 전인권, 바다, '주홍글씨'의제작사 LJ필름의 이승재 대표 등이 끝까지 고인이 가는 길을 함께 했다. 유골은 청아공원 내 기독교 관에 안치됐으며 안치 의식 역시 비공개로 1시간 가량 진행됐다. 안치관에는 바다가 쓴 편지, 베지밀, 이은주의 인터뷰 기사, 네잎 클로버 열쇠고리 등이 함께 놓였다. 오후 1시께 모든 장례 절차가 끝났다. 그러나 한석규와 황인성, 김정현 등은 유족들이 다 돌아간 후에도 1시간 가량 납골당에서 나오지 않았다. 한석규는 30여분간 안치관 앞에서 울다가 현장을 떠났고 김정현은 취재진을 향해 "이은주를 잊지 말아달라"는 짧은 말을 던졌다. (고양=연합뉴스) 윤고은, 안인용 기자 pretty@yna.co.kr djiz@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