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18:39
수정2006.04.02 18:42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김영일 재판관)는 3일 호주제에 대해 재판관 9명 중 6대 3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호주제 폐지법안의 빠른 처리와 관련,입법 보완도 급물살을 타게 될 전망이다. 헌법불합치란 해당 법률이 위헌임을 인정하면서도 법적 공백을 막기 위해 법 개정 때까지 일정 기간 해당 조항의 효력을 유지하거나 한시적으로 중지시키는 결정이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호주제는 성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에 기초해 호주승계 순위,혼인 등의 신분관계 형성에 있어 남녀를 차별하고 개인을 존엄한 인격체가 아닌 가(家)의 유지와 계승을 위한 도구적 존재로 취급하고 있어 양성평등 및 개인의 존엄을 천명한 헌법 36조1항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위헌선고를 내릴 경우 신분관계를 공시·증명하는 공적 기록에 중대한 공백이 발생한다"며 "새 호적법이 개정될 때까지 기존 조항을 잠정적으로 계속 적용키로 한다"고 덧붙였다.
◆결정배경 및 의미=호주제에 대한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은 변화된 가치를 받아들이되,오랜 관행을 청산할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는 현실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호주제는 '남녀평등주의'에 위배되는 명백한 위헌이지만,당장 없앨 경우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현실을 감안한 것이다.
헌재는 남성우월적 가치관이 반영된 민법 일부 조항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어머니와 누나를 제치고 아들이 호주를 승계하거나,할머니와 어머니가 있는데도 어린 손자가 호주의 지위를 차지하는 남녀차별 사례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또한 남자가 혼인하면 자신의 가(家)에 머물거나 새로운 가의 호주가 되는 반면 여자는 자신의 가를 떠나 남편이 속한 가나 남편이 호주로 된 가의 가족원이 되도록 하고 있어 처의 종속적 관계를 고착화시키고 있다고 헌재는 판단했다.
◆민법개정 급물살=헌재의 결정에 따라 국회에 계류 중인 호주제 폐지법안의 빠른 처리와 관련 입법 보완도 급물살을 타게 될 전망이다.
폐지 반대를 주장하고 있는 일부 정치인들이 '대세'를 따를 명분을 얻었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2003년 9월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한 민법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었다.
그러나 호주제 폐지를 당론으로 정한 열린우리당과 달리 한나라당의 소극적 태도로 법안 처리가 미뤄져왔다. 따라서 호주제가 어떤 모습으로 개정될 것인가도 관심거리다.
민법개정안(정부안)은 '호주와 다른 구성원'으로 규정된 가족의 개념을 '배우자와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등으로 새롭게 정하도록 하고 있다.
자녀의 성과 본은 아버지의 것을 따르는 것이 원칙이지만 강제되지는 않으며 부모가 협의하면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를 수 있게 돼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 호주제 폐지 일지 >
▶1999년 5월=호주제폐지운동본부 발족
▶2000년 11월=호주제 1차 위헌소송 제기
▶2001년 4월=서울지법 서·북부지원 호주제 위헌심판 제청
▶2002년 5월=호주제 2차 위헌소송 제기
▶2003년 9월=법무부,호주제 폐지 민법개정안 입법예고
▶11월=헌재,호주제 첫 공개변론
▶2004년 12월=헌재,호주제 5차 공개변론
▶2005년 1월=대법원ㆍ법무부,호주제 대체 개인별 신분등록 방안 마련
▶2월=헌재,호주제 규정 헌법불합치 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