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분규가 몇 건이더라. 기억이 안나는데…." 일본 노동계 총본산인 렌고의 야마구치 도모루 노동조건국장은 올해 일본에서 일어난 쟁의 건수가 얼마나 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렌고의 통계집을 한참 뒤적이더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사실 노사분규가 거의 없어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고 말하다가 통계집 한쪽을 찾아내더니 "아하, 5월까지 3건이 있었네요"라고 밝혔다. 야마구치 국장은 "장기 불황으로 기업들이 희망퇴직을 실시할 때도 직원들이 쟁의를 벌였다는 소식은 들어보지 못했다"며 "일본에선 노동운동이 대립적인 분규보다는 일자리 창출에 목적을 두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73년까지만 해도 1만여건에 달했던 쟁의가 2002년 3백4건(3%)으로 줄어들자 일본은 정부 직제에서 아예 노사관계 전담 부서를 없앴다. 2001년 1월 초 정부 조직을 축소 개편하면서 후생성과 노동성을 통합, 후생노동성을 설치했다. 일본은 이때부터 전담 부서인 노정국을 폐지하고 대신 정책총괄관(참사관 4명, 정책평가관 1명)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물론 일본이 처음부터 '노사관계가 좋은 나라'였던 것은 아니다. 한때 일본도 '파업하기 좋은 나라'였다. 1940년대 후반 임금 인상과 인원 정리를 둘러싼 노사분규가 많아지기 시작해 48년에는 분규 건수 7백44건, 쟁의 참가 인원 2백30만4천명, 노동손실일이 6백99만5천일에 이를 정도로 격화됐다. 특히 1940년대 말과 50년대 초 도요타자동차 노조는 인원 정리를 둘러싸고 격렬한 투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노사는 막대한 손해를 봤다. 도요타자동차를 그만두고 지금은 나고야시에서 택시운전사로 일하고 있는 야마노 이사오(67)는 "당시 파업으로 도요타 노사는 노동자의 생활 안정과 기업의 발전은 '자동차의 두 바퀴'와 같이 한꺼번에 움직인다'는 교훈을 깨달았다"고 회고했다. 이후 도요타 노사는 63년 노사대화합을 선언한 이래 40여년간 무쟁의로 지내왔다. 사측도 근로자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종신고용제'라는 일본식 고용제도는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도요타자동차는 지난 3년간 사상 최대의 실적을 내고도 올 봄까지 3년간 노사 합의로 임금을 동결했다. 미야자키 나오키 도요타자동차 인사부장은 "노조와 임금을 결정할 때 첫번째로 고려하는 것이 국제경쟁력"이라며 "노조 간부들이 1년에 서너 번씩 중국과 태국의 공장을 둘러보고 한국과 중국 등 경쟁국과의 임금 수준을 비교한다"고 말했다. 도쿄ㆍ나고야=정구학 기자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