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정규직 인력은 새로 뽑기가 힘들어지는데…." 한 기업 인사담당자는 19일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을 민간부문에 적용할 경우 오히려 청년실업이 심각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재계는 정부가 가이드 라인으로 제시한 식으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기업들의 총 인건비 부담이 10%까지 늘어날 것으로 분석했다.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개선 문제를 긍정적으로 검토했던 기업들마저 생산성과 회사충성도 등을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인 임금인상이나 정규직 전환은 무리라며 난색을 표명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김영배 부회장은 "세계 각국이 고용유연성을 보장하고 비정규직에 대한 채용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풀어가는데 우리나라만 '우물안 개구리식'으로 문제를 풀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 인건비 얼마나 늘어날까 경총 황인철 사회복지팀장은 "민간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줄 경우 인건비 부담이 최대 10%까지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한국금융연구원 박종규 연구위원은 "정규직의 양보없이 비정규직을 정규직 처우에 맞추려면 기업은 연간 26조7천억원의 추가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같은 규모는 지난 2001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4.8%에 해당한다. 박 연구위원은 "정규직의 54% 수준인 비정규직의 임금을 정규직의 85% 수준까지만 올린다해도 연간 20조6천억원을 더 지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예상규모보다는 작지만 정부 추계치도 있다. 산업자원부는 비정규직 임금을 정규직의 85% 수준(한국노총 요구안)으로 올릴 경우 기업들이 14조7천억원을, 80%(민주노총 요구안)에 맞출 경우 10조5천억원을 추가 부담해야 할 것으로 분석했다. 산자부는 "이는 임금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생산성과 근무시간을 고려했으나 근무연수 학력 등 다른 변수는 고려하지 않는 수치"라고 밝혔다. 개별 기업들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경우 퇴직금 등 각종 후생복지비용을 포함하면 추가부담액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고용 경직성이 비정규직 늘려 비정규직을 많이 활용해온 자동차나 조선업계, 중소기업들은 정부 가이드 라인에 맞출 경우 경기변동에 따라 인력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없어 경영상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고 강조했다. 최재황 경총 정책본부장은 "금융회사와 일반 기업들이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을 많이 뽑은 것은 무엇보다 인력구조조정 차원에서 고용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정규직에 대한 고용유연성이 확보되지 않는 한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예약과 항공서비스 분야에서 비정규직을 활용하는 대한항공 관계자도 "기업들마다 비정규직 인력을 쓰는 것은 근본적으로 퇴직금 등을 포함해 전체 인건비에서 부담이 적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고도화되는 경제구조와 급속한 고령화 속에서 고용형태를 다양화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많이 쓰는 것은 세계적이고 시대적인 대세"라며 "정규직 지상주의는 오히려 일자리 창출의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정규직 고용유연성 보장해야" 비정규직 해법을 놓고 노동계는 정규직과의 임금격차를 줄여달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반면 재계는 정규직에 대한 고용유연성부터 보장해 줘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재계는 노동계의 '정규직 지상주의'는 노동시장 왜곡과 고용 시장 악화를 초래할 뿐이라며 비정규직 문제는 정규직에 대한 과도한 임금의 자제와 고용 유연성 확대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반면 노동계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은 노동자 사이의 분배조정이 아니라 기업이 지나치게 낮은 비정규직의 임금을 올리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현석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현재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를 선진국처럼 직무급에 성과급을 합친 합리적인 임금산정 시스템으로 바꾸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정구학 기자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