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과학수사연구소 전직 직원이 민간 법의학 전문기관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설립했다. 화제의 주인공은 국과수에서 3년여간 근무했던 한길로(42) 전 법의관. 한씨는 3일 서울 서초동에 시체 검안과 부검 등 사인(死因) 확인을 전문적으로담당하는 국내 첫 민간 법의학전문기관인 서울 법의학연구소를 개소했다. 한씨는 11일 "국과수 재직시 수없이 부검을 하면서 제도상 허점을 발견하게 됐고 이를 바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국과수라는 공적인 틀보다 밖에서 할일이 더 많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법의학 연구소를 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에서 1년간 발생하는 사망사건이 4천200여건에 이르는데 이중 국과수부검은 1천여건에 지나지 않는다"며 "사건을 다 소화하지도 못하는 데다 검안.부검과정의 제도상 허점으로 사인규명에 애로사항이 많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내 현실은 의료법에 따라 치과의사.한의사 등 의사자격증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시체검안을 해 검안서를 발행할 수 있고, 범죄혐의가 있는 사건은 경찰이별도로 국과수에 부검을 의뢰해 사인규명을 해왔다 이에 따라 국내 법의학 전문가들은 검안에서 부검까지 아우르는 별도의 독립된법의학 전문기관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한씨는 1997년 3월부터 2003년 3월까지 고려대 의과대학 법의학 교실에서 법의학 교수로 근무하다 실무를 익히겠다는 결심으로 교수자리를 마다하고 2000년 11월국과수로 이직했었다. 한씨는 국과수에서의 실무경험을 살려 민간 법의학 전문기관을 세우고자 주위의만류에도 불구하고 법의학연구소를 설립하게 됐다. 그는 "사체검안은 병원 응급실 당직의사나 현역에서 은퇴한 노령의 의사들이 주로 맡고 있다"며 "사체검안 단계서부터 비전문가들이 맡기 때문에 사인확인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억울한 죽음이 묻혀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한씨는 일단 강남.서초.용산서 등 평소 알고 지내던 경찰에게 법의학 연구소 개소 소식을 알리고 경찰로부터 의뢰를 받는 형식으로 본격적인 사체검안 업무에 들어갔다. 개소 이후 현재까지 서울경찰청 현장감식반, 용산경찰서 등에서 한씨에게 시체검안 등을 의뢰한 건수는 모두 10여건. 그는 "일단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의뢰를 해오면 검안을 맡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고 있다"며 "민간 법의학 전문기관이 현재로서는 불모지이지만 억울한 죽음은없어져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정윤섭기자 jamin7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