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급증하는 이혼을 막기 위해 '이혼 전 상담절차 의무화'라는 극약 처방까지 들고 나왔지만 개인주의가 갈수록 확산되고 장기적인 경기 침체까지 겹쳐 이혼하는 사람들이 계속 증가일로를 치닫고 있다. 지난해에는 이혼이 16만7천건으로 2002년보다 15.0%나 급증한 가운데 특히 '경제 문제 때문에 헤어졌다'는 이혼 사유가 6건 중 1건 꼴에 달해 경제 사정으로 인한가족 해체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반영했다. ◆경제 문제로 이혼 급증..98년과 닮은 꼴 지난 1990년 이후 전년 대비 이혼 증가율이 가장 높았던 때는 외환 위기의 충격으로 온 나라가 몸살을 앓았던 지난 1998년으로 무려 28.0%에 달했다. 이듬해인 1999년에 1.1%로 급락했던 이혼 증가율은 경기 침체, 청년 실업, 신용불량자 문제로 사회가 크게 어지러워진 지난해에 또다시 수직 상승하며 5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경제 문제가 가정 해체로 직결되고 있음을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이혼 부부들이 제시한 이혼 사유에서도 이는 여실히 드러난다. 전통적으로 최대의 이혼 사유인 '성격 차이'의 비중이 45.3%로 여전히 수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고부갈등 등을 포함한 '가족간 불화'의 비중은 13.0%로 3위로 밀려나고 '경제 문제'가 16.4%로 2위로 올라섰다. 이혼 사유에서 '경제 문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7년 4.4%에서 한국 사회가 외환 위기의 후폭풍에 휩싸여 있던 1998년 6.9%로 크게 커진 뒤 꾸준히 상승해 6년 만에 3.7배로 확대된 것이다. 거의 모든 문제에서 그렇지만 이혼에서도 돈이 결정적인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반증인 셈이다. ◆'백년해로' 옛말..언제라도 기꺼이(?) 이혼자의 연령이나 동거 기간을 보면 중장년층이 이혼에 과감하게 나서면서 '백년해로'라는 말이 무색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젊은층이 이혼 사유 급증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면 전혀 오산이다. 결혼 4년차미만의 이혼 비중이 지난 1993년의 35.8%에서 2003년에는 24.6%로 급감했다. 반면 20년 이상 산 부부가 헤어지는 이른바 `황혼 이혼'의 비중은 5.3%에서 17.8%로 3.4배로 늘었다. 연령별로도 지난해 55세 이상 남자 중 이혼한 사람의 비율이 3.8%로 10년 전의1.1%에 비해 3.5배로 늘었고 여성도 같은 연령층의 비중이 0.9%에서 6.0%로 무려 6.7배로 폭증했다. 오랫 동안 함께 살고도 헤어져야 한다는 판단이 서면 부부 양쪽 모두 기꺼이 이혼을 선택하는 풍조가 더욱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993년에는 이혼 부부 1천쌍 중 196쌍은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재판을 거쳐야 했지만 2002년 156쌍에 이어 지난해에는 134건으로 더욱 줄었다. ◆급증하는 국제 결혼..중국 며느리. 일본 사위 최다 지난해 결혼 동향의 특징 중 하나는 전체 결혼 10건 중 1건 꼴고 급증한 국제결혼의 일반화 현상이다. 특이한 것은 한국 남성-외국 여성간 결혼에서 여성의 국적이 중국인 경우가 69.6%로 대다수이고 베트남이 7.3%로 그 다음인 반면 한국 여성-외국 남성의 결혼에서남성의 국적은 일본이 40.5%로 수위이고 미국이 19.2%로 2위라는 점이다. 이 현상은 적절한 결혼 상대를 찾지 못한 한국의 농촌 총각들이 조선족을 비롯해 중국이나 베트남 등 동남아 여성과의 결혼에 나서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02년에 7천41건이던 한국 남성-중국 여성간 결혼은 한국내 혼인 신고시중국인 배우자의 미혼 증서와 결혼 공증서를 주중 한국 공관이 확인하던 제도가 지난해에 폐지되는 등 절차가 간소화되면서 1만3천373건으로 급증했다. 한국 여성-외국 남성간 결혼에서는 남성의 국적이 방글라데시(158건), 파키스탄(130건) 등인 경우도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아시아 각지 출신의 이주 노동자 급증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나이, '결혼의 장벽' 아니다 지난해 결혼에서 나타난 또다른 특징은 '여성 연상','부부간 나이차 10세 이상'등이 크게 늘어나면서 결혼과 나이의 상관 관계에 대한 과거의 통념들이 허물어지는현상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여성이 연상인 경우는 지난 1993년 8.5%에 머물렀지만 10년만인 지난해에는 이비중이 11.7%까지 상승했고 동갑의 비중도 9.4%에서 14.7%까지 늘어났다. 다시 말해여성의 나이가 더 많거나 동갑인 부부가 전체 신혼 부부 4쌍 중 1쌍 꼴을 넘는다는이야기다. 특히 여성이 6세 이상 연상인 신혼 부부의 비중이 10년 전의 0.4%에서 0.6%로상승했고 남성이 여성보다 10살 이상 많은 신혼 부부도 2.5%에서 3.5%로 올라갔다. 만혼 현상이 더욱 확산돼 '20대 신랑'을 보기가 힘들어진 것도 새로운 혼인 풍속도로 자리잡고 있다. 남성의 초혼 연령은 지난 1993년 28.1세에서 매년 꾸준히 높아져 2003년 처음으로 30.1세로 30세를 넘어섰고 여성도 25.3세에서 27.3세로 상승했다. 이 추세대로간다면 10년 쯤 후에는 '여성 초혼 연령 30세' 시대를 맞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없는 상황이다. (서울=연합뉴스) 김종수기자 jski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