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킴벌리식 일자리 나누기 권장, 노ㆍ사ㆍ정 일자리 창출 특위 구성, 비정규직 처우개선 입법 추진, 하청업체 임금부담 전가 처벌 등 최근 정부가 내놓은 일련의 노동정책에 대해 기업들이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울산과 구미 등 제조업 현장의 경영자들은 "해마다 고율의 임금 인상과 고용 보장을 요구하는 기존 노조가 양보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 비정규직 처우 개선, 하청업체 문제까지 떠맡을 경우 경영부담이 너무 크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실업대란 시대에 일자리 나누기나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추진하자는데 반대할 명분이 없다"면서도 "생색은 정부와 노동계가 내고 실제 부담은 기업이 지게 된다"고 하소연했다. 기업들은 일자리 창출 정책 등이 실효를 거두려면 정부와 양대 노총이 정규직 노조의 '고통분담안'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주문한다. 양대 노총은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올해 임단협의 최대 이슈로 부각시킨다는 방침 아래 한국노총의 경우 정규직 임금의 85%까지 인상하는 가이드 라인까지 제시하면서도 대기업 노조의 임금 인상 자제에 대해선 언급이 없는 실정이다. 노총은 물론 단위노조들도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해 양보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단일 노조로는 국내 최대 규모인 현대차 노조의 경우 근로조건 개선을 내세워 24시간 맞교대로 생산라인을 가동하는 현행 근무시스템을 임금 삭감 없이 전면 개편하고 지난해 경영 호조에 따른 성과급 추가 지급까지 요구할 태세다. 이처럼 정부와 노동단체들이 일자리 창출에 대한 정치ㆍ사회적인 기대와 명분을 등에 업고 과잉 요구를 분출하려는데 대해 기업들은 크게 우려하고 있다. 현대차의 한 간부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처우 문제가 생긴 배경에는 정규직의 고임금 투쟁 등 이기주의가 깔려 있다"면서 "정규직 노조의 양보에 대해선 왜 정부가 말을 아끼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울산 경주 등지의 중소 부품업체들도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경주 영풍기계 이일병 이사는 "비정규직의 임금을 올리면 그 동안 임금 인상을 억제해온 중소업체 근로자들의 임금도 도미노처럼 오를 수밖에 없어 경영 타격은 불가피하다"고 걱정했다. 현대중공업의 한 노무관리 간부도 "정부의 노동정책은 기업 현실과 지나치게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규직의 경우 근속연수가 평균 14년이라면 비정규직은 1~2년 정도에 불과해 작업 숙련도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면서 "정부와 노동계 안대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려면 교육훈련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를 누가 부담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유한킴벌리식의 일자리 창출에 대해서도 기업들은 전투적 노사관계가 바뀌지 않는 한 성공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이효수 한국노동경제학회장(영남대 교수)도 "유한킴벌리 사례는 근로자들 스스로가 조업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희생을 감내하고 기술교육과 훈련을 통한 생산성 향상으로 손실분을 보전받는 노사상생의 의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비정규직 처우 개선이 실현되려면 과도하게 보호받는 정규직과 그렇지 못한 비정규직으로 양분돼 일자리 창출에도 악영향을 주는 현재의 왜곡된 노동시장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들이 정규직 채용을 기피하게 만든 과도한 고용보장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대중공업 김종욱 노사관리실장(이사)은 "다행히 민주노총 위원장이 노사관계 안정을 바라고 있고 정부와도 코드가 맞는 만큼 올해는 전년과 같은 경직된 노사관계는 없을 것"이라고 마지막 기대의 끈을 놓치 않았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