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시교육청이 선행학습을 하면 불이익을주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며 선행학습 근절 캠페인까지 벌이고 있지만 정작 학생과 학부모, 심지어 학원조차 현실성이 없다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7세 이하 미취학 어린이들조차 초등학교 1~2학년 과정을 학원 등 사교육을통해 미리 배우는 등 사실상 선행학습이 정규학교 교육 전부터 광범위하게 이뤄지고있어 실질적인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오는 11일 개최하는 한국노동패널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2년 314명의 미취학 어린이를 둔 가구의 사교육비 실태조사 결과월평균 12만8천원을 지출했다. 이는 연구원이 지난해말 발표한 2002년 재수생 이하 자녀를 둔 가구의 월평균사교육비 23만9천원의 절반을 웃도는 금액이다. 특히 취학 직전인 6~7세 어린이를 둔 가구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15만4천원으로3~5세 어린이를 둔 가구의 11만6천원보다 3만8천원이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또 0~2세의 유아를 둔 가구도 월평균 12만4천원을 사교육비로 지출해 유아 대상선행학습이 이미 폭넓게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 선행학습 실태 = 연구원이 사교육을 받고 유치원,보육시설을 동시에 이용하는 미취학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0~2세의 자녀를 둔 가구는 월평균 21만4천원을 지출, 6~7세 자녀를 둔 가구의 사교육비용 11만원의 배가 넘었다. 연구원은 "최근 고가의 방문형 놀이지도 형태의 사교육이 성행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그 사례가 많지 않지만 유치원과 보육시설의 재능.특기교육 외에 0~2세 어린자녀가 비싼 사교육을 받는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양천구 신정동의 M영어학원. 중학교 3학년까지 영어를 가르치는 이 학원에150명의 전체 수강생 중 취학 전 어린이는 10% 정도인 15명이다. 오전에 유치원에 갔던 아이들은 오후에 이 곳에서 1~2시간 영어를 배우는데 수강료는 월 15만~20만원. 처음 학원에 들어가면 그림 위주의 교재로 알파벳과 단어를 익히지만 2~3개월정도 뒤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과거형, 소유격 등 영문법 지식이 필요한 독해까지 할수 있을 정도로 영어를 배운다. 이 학원 원장 이모씨는 "영어는 일찍 배워야 하기 때문에 사교육 의존도가 높을수 밖에 없다"며 "대다수 아이들이 원어민과 함께 회화 위주로 영어를 배우는데 초등학교에 가면 한국인 선생님과 문법 위주로 배워 재미없어 한다"고 말했다. ◆ `현실 모른다'..학원가 냉담한 반응 = 서울 반포에 위치한 B학원의 교무부장은 최근 70명의 학원생들에게 선행학습 없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겠느냐는 내용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고 놀랐다. 선행학습 없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고 답한 학생은 단 1명뿐이었다. 그는 "명문대에 가기 위해 고등학교 과정을 4년으로 보고 `고4'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며 "어려운 문제 몇 개 더 맞히면 대학과 학과가 바뀌는 현실에서 아이들과학무모들이 왜 선행학습에 매달리는지 교육당국이 잘 모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7차 교육과정이 학생들의 선택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추진되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현실적으로 일선 학교가 이를 따라가지 못해 학원으로 학생들이 더 몰린다는 게학원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잠원동 S학원 교무부장은 "시교육청은 명분상 선행학습을 단속하겠다는 데 세부안이 어떻게 나올지 지켜보고 있다"며 "그러나 지금 평가시스템을 유지하면서 선행학습을 단속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목동에서 중.고등교 상위권 학생들을 대상으로 가르치는 D학원 수학교사 이모(35.여)씨는 "시교육청 방침은 인사치레 정도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런 조치로 겪게될 불이익에 대해서도 크게 신경쓰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공권력을 앞세우기 전 선행학습을 보완할 수 있는 학교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1, 고1 예비반을 운영하는 신정동 Y학원 김모(25) 업무실장은 "1,2년 안에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며 "제도상으로 선행 학습을 막으면 음성적인 곳에서 더욱 많이 생기고 가격도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광철기자 gcm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