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이성적인 판단력이 부족한 어른들의 범죄로 죄없는 아이들이 잇따라 희생되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이른바 `무동기 범죄'가 국내에서도 나타나고있는 것이다. `무동기 범죄'는 원한이나 채무관계 당사자들끼리 목숨을 빼앗는 기존 범죄와는달리 현대사회에서 중시되는 개인주의와 생명경시 풍조의 극단에서 발생하는 것으로,범죄동기가 불분명하고 피해자와 범인간 인과관계도 찾을 수 없는 범죄다. 특히 심리적 극한상황에 몰린 범인들이 자제력을 잃은 상태에서 저지르는 무동기 범죄의 피해자는 주로 저항력이 약한 어린이들이라는 데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있다. ◆ `아이들이 무슨 죄' = 유난히 추운 날씨로 잔뜩 움추렸던 지난해 12월19일. 아버지가 두 자녀에게 약을 먹이고 차디찬 한강으로 떨어뜨린 믿기 힘든 사건이일어나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꽁꽁 얼려 버렸다. 정신치료 경력이 있는 20대 철없는 아버지가 카드빚 등으로 생활고를 겪자 6살과 5살 난 두 남매를 한강으로 던져버린 이 사건을 본 시민들은 `아무리 힘들다고해도 어떻게 생떼같은 자식을 죽일 수 있느냐'며 경악했다. 이에 앞서 7월에는 생활고에 시달린 어머니가 인천 부평의 한 아파트 15층에서`죽기 싫다'고 애원하는 두 딸을 먼저 던진 뒤 자신도 함께 뛰어내린 끔찍한 사건이일어났다. 또 지난해 12월29일 서울 거여동의 한 아파트에서는 자신의 여고 단짝친구가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는 것을 시기한 30대 여성이 친구와 친구의 어린 두 남매를 목졸라 집단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다. 지난해 10월에는 가정불화를 비관한 30대 주부가 초등학생 딸과 아들을 목졸라살해하고 수원 시내 야산에 시체를 유기했고, 8월에는 부산에서 빚에 시달린 30대아버지가 딸을 살해한 뒤 자살하려다 경찰에 붙잡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거여동 일가족 피살'사건을 수사한 송파경찰서 관계자는 "범인의 자백을 받았지만 범행 동기가 납득하기 힘들 정도로 불분명하다"며 "사람을 죽이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데 놀랐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송파서 이문국 형사과장은 "질투 대상이었던 여고 동창생은 그렇다 치더라도 말도 못하는 어린 남매는 무슨 죄가 있어서 그렇게 억울하게 죽어야 하는지 안타깝기만 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 극단화된 개인주의..전문가들도 무대책 = 이러한 `무동기 범죄'에 대해 전문가들도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살인 사건은 인과관계가 뚜렷해 제3자의 입장에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 일어나는 무동기 범죄는 상식선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임준택 교수는 "아무 죄없는 아이들을 죽이는 무동기 범죄는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회병리 현상"이라며 "기본 인성이 파괴된 현대인이인격장애를 극단적 방법으로 표출하는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범죄 전문가들은 지난해 미국 워싱턴에서 발생한 연쇄 저격사건을 무동기 범죄의 대표적인 사례로 든다. 이 같은 범죄는 심리적 스트레스와 적대적인 외부환경에 직면한 개인이 자제력과 인내력과 같은 자기방어 기제를 작동하는 대신 타인에게 이런 스트레스를 전이할때 일어난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임 교수는 "선진국에서 많이 일어나는 무동기 범죄가 향후 국내에서도 증가할것"이라며 "인간성 회복과 인간사랑을 되찾는 아주 기본적인 대안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한양대 사회학과 심영희 교수는 "극단적인 개인주의로 자신의 욕망을 분출하는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회로 변모하고 있는 가운데 경제적 어려움이 겹쳐이 같은 범죄가 빈발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무동기 범죄'에 대해서는 "아이들을 독립된 인격체로 보지 않고 자신의소유물로 보는 `어른답지 않은 어른'들이 양산되고 있는 사회 시스템이 원인"이라고진단했다. (서울=연합뉴스) 강훈상 기자 hskang@yonha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