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라고 밝히면 취직이 안돼요." 북한에서 의대 3학년까지 다니다 탈북, 지난 5월 한국땅을 처음 밟은 이모(32)씨는 페인트칠 등 아르바이트를 하며 의대 편입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그러나 당장의 생계 유지를 위해 잡역부 구인 광고 등을 보고 이리저리전화를 하지만 번번히 실망하기 일쑤다. 업체측이 취직을 약속했다가도 막상 면접에서 탈북자라는 사실을 밝히면 연락을끊는다는 것. "낯선 사회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탈북자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편견을버리고 기다려주었으면 좋겠어요." 함께 탈북한 여자 친구와 내년 초 결혼을 약속한 그는 "앞으로 의사의 꿈을 이뤄 의료 자원 봉사로 사회에 보답하고 싶다"고 꿈을 밝히기도 했다. 북에서 운전을 하다 지난해 탈북한 김모(37)씨는 아예 사람들에게 자신이 탈북자라는 사실을 밝히고 싶지 않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취업을 해도 사람들과의 마찰이 문제라며 그동안 청소업 등 7∼8곳에 취직을 했지만 거의 두 달도 못채우고 그만뒀다며 현재 공사장 잡역부로 하루하루를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동료 탈북자와 결혼, 내년초 아빠가 되는 그는 "탈북자라는 신분을 굳이 밝힐 필요가 없는 자영업을 하고 싶다"며 "돈을 많이 벌어 통일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밝혔다. 김씨 등 이들 탈북자는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구기동 이북5도청 강당에서 열린'북한 이탈주민 후원행사'에서 동료 탈북자 100여명과 함께 서투르기는 하지만 애절한 마음을 담아 애국가를 불렀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북한을 탈출, 중국, 태국 등을 헤매다 올해 꿈에 그리던 남녘 땅을 밟은 이들은북한이탈주민 정착ㆍ교육시설인 하나원을 나와 사회에 뛰어든지 불과 수개월만에 당당한 대한민국 국민이 된 것이다. 그러나 남한 사회는 결코 따뜻하지 않았다. 남북한의 서로 다른 체제와 문화적 이질감, 탈북자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 등이 이들을 늘 외롭게 했다. 지난 5월 탈북한 김모(40)씨는 "남한 사회에 정착하기 가장 어려운 점은 솔직히속을 털어 놓을 수 있는 가까운 이웃이 없는 것" 이라며 "탈북 후 서울로 가는 비행기안에서 반드시 남한 정착에 성공, 꿈을 이루겠다고 굳게 맹세했지만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이북5도위원회, 이북도민회중앙연합회, 북한이탈주민후원회가 공동 주최한 이행사는 올해 6년째로 주최측은 이날 탈북자들에게 성금과 함께 쌀, 담요 등 격려품을 전달했다. 북한이탈주민후원회의 우윤근 회장은 "해가 갈수록 탈북자가 늘고 계층도 다양해져 청소년의 학교 적응, 고령 탈북자의 건강, 생활 안정 등 어려운 문제들이 많다" 며 "탈북자들이 남한에서 능력을 계발할 수 있도록 탈북자 관리와 정착교육 전문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국내에 정착한 탈북자는 해마다 늘어 지난해 처음 1천명을 웃돌았으며 11월30일 현재 모두 3천990여명에 달한다. (서울=연합뉴스) 이귀원기자 lkw77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