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이름을 빌려(명의신탁) 부동산 등을 살 경우 실소유권을 인정받을 수 없다는 법원 1심 판결이 나왔다. 이는 부동산 명의신탁제도의 허점을 악용한 투기ㆍ탈세ㆍ탈법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선 형사처벌 및 과징금 부과만으로는 부족하며 민사상 손해도 감수해야 한다는 법원의 의지를 피력한 것이어서 향후 상급심 판결이 주목된다. 특히 이번 판결은 기업들이 임직원 명의로 업무용 토지를 은밀히 매집하는 관행이나,부동산 투기업자의 청약통장 불법매집 행위 등에도 영향을 미쳐 적지 않은 논란을 빚을 전망이다. 대법원은 지금까지 명의신탁을 통한 부동산 거래에서 실질적인 거래가 입증됐을 경우 형사처벌과는 별개로 실제 매입자의 소유권을 인정해왔다. 서울지법 민사합의20부(재판장 조희대 부장판사)는 9일 정모씨(65) 등 4명이 "현재 등기 소유자로 돼 있는 김모씨(59ㆍ여) 등 4명은 서울 돈암동 토지 3천여㎡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하라"며 제기한 소유권 이전등기 등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명의신탁은 반사회질서 불법 법률행위로 도박 빚이 보호받지 못하는 것과 같은 '불법원인급여' 행위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쟁점이 된 H사찰 땅은 지난 2000년 5월 윤모씨 이름으로 이전 등기된 뒤 2002년 12월 윤씨가 사망하자 미망인인 김씨와 자녀3명에게 소유권이 이전됐다. 원고들은 "H사찰 땅을 실제로 매입한 측은 우리이며 사망한 윤씨는 이름만 빌려줬을 뿐"이라며 "명의신탁은 법적으로 무효이므로 소유권은 우리에게 있다"며 소송을 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