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랗게 펼쳐진 잔잔한 바다, 투명하게 쏟아지는 따뜻한 햇살, 부드럽게 얼굴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 멋진 유람선을 타고 푸른 바다를 누비는 크루즈에는 다른 여행에서 얻을 수 없는 색다른 즐거움이 있다. 골치 아픈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와 평화를 마음껏 즐길 수 있고, 밤마다 열리는 선상파티에서 한껏 멋을 부려볼 수도 있다. 전세계에서 온 관광객들과 금세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될 수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크루즈 여행이 미국인들을 사로잡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여행 비즈니스 전반이 고전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크루즈 여행이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크루즈 여행이 활기를 띠는 것은 다소 역설적이지만 '여행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9ㆍ11테러에 이어 이라크전쟁, 사스(SARS)까지 겹치면서 미국 관광객들이 보다 안전하고 편안하게 휴가를 즐길 수 있는 크루즈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동일한 사건이 한쪽에는 된서리를, 다른 한쪽에는 기회를 가져다준 셈이다. 국제크루즈협회(ICCL)에 따르면 올해 미국의 크루즈 관광객은 800만명으로 지난해 740만명보다 8% 가량 늘었다. 지난 80년 140만명과 비교하면 6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ICCL의 마이클 크라이 회장은 "크루즈산업은 미국에서 가장 전망이 밝은 분야"라고 강조했다. 크루즈 비즈니스는 미국시장의 중요성이 특히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BREA에 따르면 전세계 크루즈 관광객의 80% 이상이 미국인이다. 미국시장이 바로 세계시장인 것이다. 올해 전세계 크루즈 관광객은 920만명으로 추정된다. 시장규모는 204억달러에 달한다. 크루즈 비즈니스는 여행업계뿐만 아니라 미국 경기 회복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ICCL은 지난해 크루즈 비즈니스와 관련해 미국에서 27만9,112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겼다고 발표했다. 크루즈업체가 직접 고용한 인력도 2만8,000명 정도다. ICCL의 크라이 회장은 "크루즈 비즈니스가 활성화되면서 미국경제 전반에 파급효과를 주고 있다"며 "크루즈업체를 비롯한 관련 분야의 고용이 증가하고, 배에서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의 구매가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크루즈가 출발하는 항구가 있는 도시도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플로리다 탬파가 대표적이다. 탬파에서는 올해 80만명의 크루즈관광객이 탑승을 했다. 지난해 58만7,470명보다 26% 가량 증가한 것. 크루즈에 탑승하는 승객이 탬파에서 쓴 돈만 4,189만달러다. 1인당 하루 평균 154.13달러를 뿌리고 간 셈이다. 크루즈 관광객이 늘면서 탬파지역에 새롭게 창출된 일자리는 516개. 그로 인한 임금 지급 총액이 129만달러를 기록했다. 크루스 비즈니스 활성화로 혜택을 보고 있는 지역은 플로리다를 포함해 캘리포니아, 뉴욕, 알래스카, 워싱턴, 텍사스, 일리노이즈, 조지아, 매사추세츠, 펜실베이니아 등이다. 크루즈 여행이 빠른 성장세를 보이면서 크루즈회사들은 앞다퉈 운항횟수를 늘리고 있다. 미국에서 플로리다 탬파 다음으로 인기가 높은 크루즈 항구인 워싱턴 시애틀에서 알래스카로 향하는 크루즈 운항횟수는 내년 봄 올해보다 40% 증가한 140회로 확대된다. 크루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크루즈회사들은 관광객 끌어모이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크루즈 요금을 낮추고 다양한 행사를 마련해 관광객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크루즈회사는 우선 요금을 인하해 크루즈 여행에 대한 수요 확대를 꾀하고 있다. 크루즈는 사실 부유층을 위한 관광상품이라는 인식이 높았다. 요금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크루즈회사들은 일반인이 큰 부담 없이 크루즈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요금을 크게 낮췄다. 일주일 일정으로 캐리비언을 왕복하는 크루즈의 경우 최저요금이 1인당 400~500달러 정도다. 드물지만 비수기에 운이 좋으면 200달러 이하에 크루즈 여행을 할 수도 있다. 물론 객실의 종류에 따라 2,000달러가 넘는 상품도 있다. 여기서 크루즈회사의 이중전략을 엿볼 수 있다. 일반인을 상대로 한 저가전략과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고가전략을 동시에 펴고 있는 것이다. 저가전략으로 크루즈 여행을 대중화하고, 고가전략으로 부유층을 유혹해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시도다. 크루즈회사들은 또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고객을 모으고 있다. 크루즈는 일광욕을 하면서 책을 읽고 밤에 파티를 하는 단조로운 여행으로 여겨지지만 최근에는 크게 달라졌다. 다양한 계층의 승객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속속 선보이고 있다. 최근 인기가 있는 것은 테마 크루즈다. 음악감상, 와인시음은 물론 재무상담, 역사강의 등 다양한 테마를 마련해 관심 있는 승객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캠프 크루즈도 인기다. 어린이 캠프를 열어 방학에 아이들이 참가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어린이 캠프 크루즈는 아이들의 연령에 따라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크루즈 패키지도 증가하고 있다. 배에 탑승하기 전 근처 도시에서 관광을 할 수 있게 짜놓은 것이다. 항구 가까운 호텔에서 크루즈 전에 하루나 이틀 정도 머무를 수 있는 상품이다. 샌프란시스코의 크리스털 크루즈는 12일짜리 패키지를 마련했다. 알래스카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를 거치는 크루즈를 하기 전 3일 동안 와인으로 유명한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서 와인을 맛볼 수 있는 짧은 여행을 추가한 것이다. 크루즈에는 최근 새로운 트렌드가 자리잡고 있다. 그중 하나가 레스토랑이다. 예전에는 승객들이 정해진 곳에서 식사를 했다. 요즘은 전세계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다양한 레스토랑이 생겨 승객들이 취향에 따라 식사를 할 수 있게 배려하고 있다. 그외 인터넷카페, 사우나 등을 마련해 승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크루즈 홀리데이의 소유주인 테리 밀러씨는 "크루즈 여행은 다양성과 선택으로 표현할 수 있다"며 "가볍게 즐길 수 있는 크루즈 상품이 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크루즈 관광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지역은 캐리비언과 산후안 등이다. 여름에는 알래스카와 유럽 쪽도 인기가 높다. 겨울철에는 특히 따뜻한 곳을 많이 찾는다. 크루즈 여행의 백미는 중간 정박지에서 할 수 있는 레저. 유명한 관광지에 잠깐 내려 해변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하이킹, 관광을 할 수 있다. 크루즈 선박의 규모는 다양하다. 대형 크루즈는 한번에 3,114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다. 아이스링크와 암벽등반시설, 카지노, 수영장은 물론 극장과 쇼핑몰까지 있다. 크루즈회사인 카니발크루즈는 내년에 4,000명 규모의 크루즈를 선보일 예정이다. 소규모 크루즈도 인기가 있다. 승객이 40명 정도 탑승한다. 대형 크루즈와 달리 소규모 크루즈는 직접 항해를 돕는 것이 특징이다. 선장과 승무원들을 도우면서 항해의 재미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크루즈 여행은 앞으로 꾸준한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여유롭게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상품이 속속 선보이고 있고, 크루즈에 대한 젊은층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베이비붐 세대가 나이를 먹으면서 해외여행보다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크루즈의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크루즈회사들이 새로운 고객잡기에 열을 올리고 있어 한동안 크루즈 인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zeneca@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