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대학들의 생존투쟁이 처절하다. 교육의 질은 차치하고 당장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하는 곳이 적지 않다. 오랜 역사와 지명도를 자랑하는 학교라 해도 주머니가 궁하긴 마찬가지. 고민을 거듭하던 대학들이 돌파구를 찾아나섰다. 기부금 모금이나 정부 지원, 자잘한 부대사업에서 돈 가뭄 해소를 기대하던 때는 지났다. 학교 부지나 보유 부동산을 적극적으로 개발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지속적인 임대수익을 얻으려는 시도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이제 부동산 개발은 상아탑 생존을 위한 '전공필수 과목'으로 부상하고 있다. "재정난은 곧 학문의 위기로 연결됩니다. 돈에 쪼들리면 교육의 질도 논할 수 없어요. 대학이 비즈니스로 돈을 벌어야 하느냐는 지적도 생존의 문제 앞에선 무의미한 겁니다." 최근 보유 부동산을 대대적으로 개발키로 한 모 대학 관계자의 말이다. 피할 수 없는 생존의 요구에 따라 수익사업을 벌여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학교가 보유한 부동산을 활용해 ‘일거다득’의 해법을 찾으려는 대학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어차피 갖고 있는 땅을 묵힐 바에야 개발사업을 통해 수익증대, 학생유치, 연구설비 확충, 학교홍보 등을 동시에 추구하자는 것이다. 대학들의 부동산 개발 참여 배경에는 심화 일로에 있는 대학 재정난이 자리잡고 있다. 대학들의 주수입원은 학생 등록금. 대학들이 등록금에 의존하는 비율은 평균 70%에 달할 정도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전국에 사립대 신설이 줄을 이으면서 학생 유치 경쟁이 뜨거워졌고, 학생수 감소를 막지 못하는 대학은 존립 자체를 걱정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전국 350여개 대학 가운데 이 고민에서 자유로운 학교는 몇 안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서울 수도권보다는 지방이, 국립대보다는 사립대가 더 어려운 상황이다. 2003학년도 대입에서 정원의 12.8%인 8만5,000여명이 미달됐고, 이중 88%가 지방대에서 발생했다는 통계가 그 심각성을 말해준다. 상황이 이쯤 되니 대학마다 '돈줄'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기부금 독려, 정부 지원금 요청, 부대사업 전개 등은 이미 새로울 게 없는 이야기가 됐다. 그 대신 대학이 보유한 부동산을 ‘개발’의 측면에서 접근, 이른바 ‘최유효 개발’에 나서는 대학들이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이는 최근 몇 년째 이어진 부동산경기 호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학교는 서울의 건국대학교와 경북 경산시의 대구대학교. 건국대는 야구장과 골프장 부지 3만여평에 주상복합아파트와 대형 유통시설 등을 유치하기로 했고, 대구대는 120여만평의 캠퍼스를 실버타운, 호텔 등이 들어서는 테마형 캠퍼스로 통째 개발하기로 했다. 이밖에 한양대, 호서대, 부산대, 포항 선린대 등에서도 보유 부동산 개발에 관심을 갖고 있거나 이미 개발에 착수한 것으로 조사됐다. '땅부자 학교'로 유명한 건국대의 경우 서울 광진구 건국대 캠퍼스 맞은편의 야구장 부지 3만여평은 오랫동안 부동산시장의 관심사였다. 서울 도심권에 그만한 땅이 드문데다 대학측이 진작부터 이 부지의 활용에 관심을 기울여왔기 때문이다. 96년 지구단위계획 후 7년의 준비 끝에 지난 1~2월 부지 내 일반상업지역과 준주거지역에 대한 건축허가를 받았다. 건국대는 이곳에 '또 하나의 도시'를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와 백화점, 할인점, 문화체육시설, 근린생활시설 등을 건설해 길 하나 사이의 캠퍼스와 더불어 총 30만평 규모의 '건대타운'을 만든다는 것이다. 야구장 부지만 따져도 연건평이 63빌딩의 3배가 넘는 20만평에 이르고 전기사용량은 웬만한 중소도시 사용량과 맞먹을 정도이니 가히 ‘타운’이라 할 만하다. 엄청난 사업규모가 가시화되자 건설 및 유통업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1차사업에 해당하는 준주거지역 개발사업 입찰에 10여개 대형 건설사가 참여, 이 가운데 사업수익 3,182억원, 임대수익 2,085억원 등 총 5,267억원을 제시한 포스코건설이 분양 및 시공권을 따냈다. 포스코건설은 이곳에 아파트 1,177가구와 오피스텔 133실 규모의 '더#스타시티'를 짓기로 하고 지난 5월 청약접수를 시작했다. 대단한 열풍을 몰고 온 스타시티 분양에는 청약신청자만 9만4,000여명이 몰렸고, 아파트의 평균 경쟁률은 75대1에 달했다. 거둬들인 청약증거금은 총 2조7,456억원으로, 단일 분양 프로젝트로 사상 최대 금액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건국대는 사업수익 3,182억원을 설비확충 등에 재투자할 계획이다. 강현직 홍보실장은 "1,600억원 정도는 건대병원 건립에, 200억~300억원은 인천의 실습용 목장을 체육대학으로 바꾸는 데 쓸 예정이고 나머지는 스타시티 인근에 추가로 건립해 임대할 상가시설에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개발이 완료되면 연 300억원 정도의 임대수익이 예상되는 만큼 학교 지원금 규모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신축 병원이 들어설 능동로 일대에 산학협동관과 제2학생회관, 예술대 등을 신축할 예정이어서 이 일대 풍경이 확 달라질 전망이다. 건국대는 이밖에도 학교 발상지인 서울 낙원동 저층 빌딩의 개발을 검토하는 등 어느 학교보다 활발한 부동산 개발사업을 펴고 있다. 또 보유 부동산의 체계적인 개발과 관리를 위해 지난해 12월 자산관리 전담법인 건국AMC를 설립했다. 경북 경산시 대구대의 경우엔 캠퍼스 126만평에 실버타운과 호텔, 온천, 골프장 등을 조성하는 국내 최초의 테마형 캠퍼스를 만들기로 했다. 대학 본연의 연구, 학술 기능 외에 휴식과 레저, 거주까지 가능한 신개념 대학을 만든다는 구상이다. 지난 11월11일 열린 사업설명회에는 건설사 등 기업 관계자와 각급 대학에서 참석,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대구대는 총 2,500억원 규모의 외자를 유치, 캠퍼스 내에 실버타운(750억원), 골프장 등 체육관련시설(200억원), 호텔 등 문화관광시설(300억원), 온천(8억5000만원) 등을 건립하기로 했다. 계획대로라면 15만평 이상이 실버레저타운으로 바뀌어 웬만한 리조트와 맞먹는 시설을 갖추게 된다. 이런 대형 구상이 가능한 것은 대구대가 가진 천혜의 자연환경과 입지 덕분. 광활한 부지와 전면의 호수가 환경친화적인데다 대구 도심에서 가까워 수요가 충분하리라는 예상이다. 특히 특수교육분야가 특화된 대학인 만큼 이와 연계한 실버타운사업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대구대는 사업자금을 프로젝트 파이낸싱으로 조달하는 한편 투자펀드를 조성해 기업 및 금융권 자금을 끌어들인다는 계획이다. 또 각 사업자에게 부지를 장기 약정 임대해 운영 및 관리를 맡기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올 연말까지 시공에 대한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끝내고 프로젝트 파이낸싱 내용도 확정지을 예정이다. 충남 아산시의 호서대는 교내에 반도체공장을 설립, 산학협력과 부지개발을 동시에 추진한다. 호서대는 반도체 및 FPD 장비업체인 한국디엔에스와 산학협력 약정을 맺고 캠퍼스 내 1만5,000여평 부지에 TFT-LCD 생산공장을 세워 이를 회사측이 20년간 임대하도록 했다. '생산형 산학협력관'으로 명명된 이 공장에는 총 100억원 규모가 투자된다. 한국디엔에스는 매월 일정한 임대료와 장학금 및 LCD 실험장비를 학교측에 기부하고 내년부터 신설될 디스플레이학과의 맞춤식 교육장으로도 공장을 제공할 계획이다. 이밖에 대구대 사업설명회에 참석한 부산대와 포항 선린대도 캠퍼스 개발에 뜻을 두고 있다. 경남 양산에 제2캠퍼스를 조성할 예정인 부산대는 지역사회와 캠퍼스의 구분이 없는 개방형으로 만들 계획이다. 김형진 대외협력과 팀장은 "광장과 근린생활시설 등을 캠퍼스와 함께 조성해 쓰임새가 다양한 캠퍼스를 만든다는 구상"이라고 밝혔다. 포항 선린대도 간호보건계열이 특화된 점을 감안, 실버타운 등을 개발하는 방안을 고심 중이다. 또 서울 성산동에 학교 소유 부동산을 보유한 한양대의 경우 건국대의 사례처럼 주상복합건물 개발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9월부터 관련법 발효, 개발 붐 확산될 듯 대학의 부동산 개발은 몇가지 공통점을 띤다. 첫째, 부지 소유권을 넘기는 방식이 아니라 장기임대나 지상권 설정 등으로 사용권을 부여한다는 것. 건국대 스타시티의 경우 주상복합건물의 소유권은 등기시 개별 계약자에게 넘어가지만 상가 등 나머지 시설은 임대방식으로 운용할 계획이다. 둘째, 개발수익의 목적이 학교 재원 마련이나 지역친화, 산학협력에 있다는 것이다. 대구대는 대규모 개발을 통해 학생수 감소에 따른 재정난을 해소하고 궁극적으로 명문 사학으로 발돋움한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이 같은 부동산 개발 움직임은 앞으로 전국 대학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특히 지난 9월부터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협력촉진에 관한 법률이 발효돼 대학들이 자체 영리사업을 할 수 있게 됐다. 호서대 반도체공장처럼 부지활용을 통한 산학협력 모델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무엇보다 대학이 보유자산을 적극 활용하는 것은 ‘생존의 요건’이라는 지적이다. 한 대학 관계자는 "해마다 학생수가 줄어들어 적자폭만 늘어나는 마당에 못할 것이 없다"며 "쓸 만한 부동산을 보유한 대학들은 개발사업을 통해 획기적인 돌파구를 마련하려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수진 기자 sjpark@kbizweek.com ------------------------------------------------------------------- [ INTERVIEW : 이재규 대구대 총장 ] "특수교육 강점 접목, 테마형 캠퍼스 만들 것" 지난 7월 윤덕홍 교육부총리의 뒤를 이어 대구대 총장으로 선출된 이재규 총장은 '피터 드러커 전문가'로 더 유명하다. 베스트셀러 를 비롯, 10여권의 피터 드러커 저서를 도맡아 번역해왔다. 최고의 경영지침서를 소개해 온 학자답게 닉네임도 'CEO 총장'. 이번에 내놓은 테마형 캠퍼스 사업계획에서도 경영자적 마인드가 물씬 풍긴다. "미국과 유럽의 여러 대학을 다니면서 캠퍼스와 연관된 각종 비즈니스가 성공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대학의 생존경쟁이 치열한 한국에서도 특화된 캠퍼스 모델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지요. 특히 대구대 캠퍼스는 자연환경과 입지여건이 탁월해 개발효과가 높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지방의 평범한 사립대학인 대구대는 최근 학생수 감소로 어려움을 겪어왔다. 줄어가는 재원을 확충하기 위해 '결단'을 내려야 했고, 그 해법으로 캠퍼스 개발을 선택한 것. "학문과 레저, 주거가 공존하는 캠퍼스는 지역주민과 투자기업, 학교 모두에 이익을 줄 겁니다. 특히 특수교육, 재활교육 분야에 노하우를 갖고 있는 만큼 실버타운사업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좋은 환경에서 의미 있는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설비를 갖춘다면 훌륭한 대학 경영의 성공모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이총장은 "대학은 교육기관인 동시에 하나의 조직"이라고 강조하고 "대학의 수익사업에 반대하는 의견들을 다독이면서 차근차근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