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한 딸(16)을 찾아 1년 이상 전국을 헤매던권모 씨 가족에게 지난 9월 한 통의 e-메일이 날아들었다. `당신 딸을 보호해 데리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권 씨 가족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정말이냐. 목소리만이라도 들어보자'는 내용으로 답장을 보냈다. 이후 20여통의 e-메일이 더 오갔으나 메일 내용이 점차 이상해져 갔다. `밀항할 자금 3천만원이 필요한데 아직 500만원밖에 못 모았다', `어제부터 따님이 아팠는데 돈이 없어 병원엔 못 데려가고 약만 지어다 먹였다', `도움을 받고싶은 게 사실이다. 가능한 선에서 도움 달라'. `딸을 찾겠구나' 했던 권 씨의 희망은 점차 의심으로 변했고 급기야 권 씨는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명문대 사회복지학과 졸업 후 청소년 공부방에서 8년 간 자원교사로도일한 외견상 `멀쩡한' 회사원 박모(31) 씨를 체포해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조사 결과 범죄 피해자는 권 씨에 국한된 게 아니었다. 잃어버린 자식을 찾아나선 다른 부모 10여명에게도 `아이가 있는 곳을 알고 있다'거나 `아이를 데리고 있다'는 식의 거짓 메일을 보낸 사실이 추가로 확인된 것이다. 또 박 씨는 주로 인터넷의 사람찾기 또는 미아찾기 사이트에 난 광고를 보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연락을 취하는 수법으로 상습공갈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2년 전 딸을 잃어버린 30대 김모 씨는 `해외 유학생인데 서울 J대학 근처 놀이터에서 따님을 봤다'는 박 씨의 거짓 메일에 속아 거주지인 전남에서 귀경해 2개월간 이 대학 인근에서 숙식하며 딸을 찾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박 씨의 범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박 씨는 지난 10월 친구의 회사 간부가 여직원을 성추행했다는 소식을 듣고 당사자에게 e-메일을 보내 "성추행 사실을 인터넷에 폭로하겠다"고 협박해 1천500만원을 입금받아 가로채기도 했다. 지난 달에는 자신이 다니는 유통회사 사장에게 "계열사에 부당지원한 사실을 금융감독원과 국세청에 폭로하겠다. 이 사실이 공개될 경우 회사가 입을 손해액의 10%를 달라"는 협박 메일을 보냈다. 박 씨는 `무명'이라는 이름으로 가입한 e-메일을 사용하고 PC방을 이곳 저곳 옮겨다니면서 수시로 피해자들에게 연락을 취해 경찰의 추적을 따돌려 왔다고 경찰은전했다. 특히 메일을 확인한 뒤 곧장 PC방을 뜨는 바람에 IP를 추적한 경찰이 10여 차례나 허탕을 치기도 했으나 지난 달 27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의 한 PC방에서 꼬리가잡혀 현장을 급습한 경찰에 검거됐다. 박 씨는 경찰에서 "공부방 자원교사로 일하며 당시 가출한 아이들을 찾으러 다니기도 하는 등 성실히 일했는데 주식투자 실패로 6천여만원의 빚을 지면서 세상이미워졌고 사회에 뭔가 위해를 가하고 싶어 범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2일 박 씨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상습공갈) 혐의로 구속했다. (서울=연합뉴스) 정성호기자 sisyph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