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부산상고 교정에서는 이 학교 출신의 실업자이자 언론경영인을 기리기 위한 흉상 제막식이 있었다. 흉상의 주인공은 김지태(金智泰.1908-1982).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씨나 현대그룹 창업주 고 정주영씨 처럼 잘 알려진 이름은 아니지만 그는 실크재벌이라고 일컫는 조선견직한국생사(朝鮮絹織韓國生絲)및 삼화(三和)고무를 직접 창업한 기업인이다. 또 부산일보와 문화방송 토대가 된 부산문화방송의 경영인도 지냈다. 그런가하면 정치에도 발을 디뎌 한국전쟁이 터진 1950년 제2대 민의원선거에서 부산갑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으며 1964년 제3대 민의원 선거에는 자유당 간판으로 국회의원에 재선되기도 했다. 이 김지태씨가 나온 부산상고는 노무현 대통령의 모교이기도 하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두 사람(노 대통령은 1946년생이다)을 이어주는 공통분모가 까마득한 고교 선후배라는 점 말고는 없을까? 노대통령은 당선 뒤 과거를 회상하며 김지태씨를 '은인'이라고 불렀다. 공부를 잘 했던 노 대통령은 중3때는 부일장학금, 고교 3년 동안은 '김지태장학금'을 받았다. 후자의 장학재단은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김지태씨가 출연한 기금으로 만든 것이었고 부일장학금 또한 김지태씨가 발행인으로 있던 부산일보사에서 지원한 것이었다. 가정형편이 넉넉치 않았던 대통령에게 이 장학금들은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최근에 출간된 「문항라 저고리는 비에 젖지 않았다」라는 제목의 '김지태 평전'은 기업가, 언론경영인, 정치인으로 살다간 그의 삶의 궤적을 그리고 있다. 이력이 이처럼 다양하기에 어떤 면에서 그의 일생은 영광과 굴곡으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의 복사판이기도 하다. 이 평전에 소개된 일화 중에 김지태가 이승만이 주도한 부산정치파동 및 발췌개헌안에 반대하다 군법회의에 기소된 이른바 '조방낙면'(朝紡落綿.1951년 4월)이라든가, 5.16 쿠데타 당시 김지태와 박정희에 얽힌 사연 등은 특히 관심을 끈다. 조방낙면이란 애초에 김지태에게 불하될 예정이던 조선방직이란 회사가 하루 아침에 이승만의 양아들 강일매에게 넘어간 사건을 말한다. 부산의 군수기지사령관 박정희와의 인연과 관련해 이 책은 부산일보와 한국문화방송 및 부일장학회를 군사정부에 강제로 빼앗긴 일화를 비중있게 다룬다. 이들을 압수한 군사정부는 5.16장학회를 만들었다. 가요 '울고넘는 박달재'에도 나오고 제목에도 포함된 '문항라'(紋亢羅)란 무늬를 넣어 속살이 약간 비칠 만큼 얇고 섬세하게 짠 비단을 가리킨다. 자명김지태전기간행위원회 편. 석필 刊. 496쪽. 1만2천원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taeshi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