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송금 의혹 및 현대비자금 150억원 수수 혐의(뇌물수수 등)로 구속기소된 박지원 전 문화부 장관의 결심공판에서는 단연 박 전장관이 자필로 쓴 최후진술서에 이목이 집중됐다. 박 전 장관은 편지지 표지를 포함, 9장 분량의 진술서를 30여분간 또박또박 읽어가며 91년 정계 입문 이후 생활방식과 김대중 전 대통령을 보좌했던 경험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정치역정을 되짚어 나갔다. 지난 7월부터 그동안 진행된 12번의 공판 과정에서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으로재판에 임했던 그는 숨가쁜 정치 일정 때문에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안타까움을 언급하는 부분에서는 끝내 목이 메어 법정이 숙연해 지기도 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의 성공이 대한민국의 성공'이라는 신념을 갖고 김 전 대통령을 보좌했다"며 "91년 정계 입문후 김 전 대통령의 당선과 성공을 위해 새벽부터 밤중까지 일요일도, 휴일도 없이 하루의 휴가도 가지 않고 일만 했다"고 말했다. 그는 "처와 대학생인 두 딸을 두고 있으나 그동안 사랑하는 가족과 휴가 한 번가지 못한 것이 구속수감중 새삼스럽게 생각돼 속죄의 마음이 앞선다"며 "그래서 처에게도 옥중에서 매일 편지를 보내고 있다"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는 또 언론 등에서 자신을 `실세'로 표현하기도 했지만 청와대 공보수석으로재직중이던 지난 98년 교육행정 공무원으로 정년퇴임한 사촌형이 광주 모대학 사무총장으로 추천됐다는 사실을 알고 오해가 생길까봐 만류한 일화를 소개하며 자중자애했음을 호소했다. 박 전 장관은 이어 대북송금 의혹사건 등 자신이 연루된 사건의 물의에 대해 사죄하면서도 현대로부터의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서는 관련자 진술의 모순점을 하나하나 꼬집으면서 결백을 주장했다. 그는 "특검에서 150억원을 받았다는 신문에 어안이 벙벙해 할 말을 잃었다"며 "김영완씨는 건강과 가족 안전문제를 내세워 귀국일정을 밝히지 못한다고 했는데 무고한 나 역시 고혈압과 대장염,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고 가족도 매일 눈물 속에 지내고 있다"고 호소했다. 박 전 장관은 대북송금 문제와 관련, "변명할 점도 있지만 역사 속에 묻고 국가와 통일을 위해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그러나 정책적 차원의 현대 지원이 아닌 대출이나 송금에는 전혀 관계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한편 박 전 장관의 변호인인 서동기 변호사는 박 전 장관이 한빛은행 불법대출사건으로 청와대를 떠난 후 부인이 미국행을 강력 권유했지만 김 전 대통령 내외가만류, 정권말까지 대통령을 보좌하게 됐다는 일화를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서 변호사는 "김 전 대통령이 박 전 장관 부부를 청와대로 불러 부인에게 30여분간 `가정생활이 안타깝지만 국가를 위해 내조를 잘해 달라'고 당부했으며, 박 전장관에게도 `자네는 나와 할 일이 있다'며 방문 밖까지 배웅하는 배려를 보여 부인도 주장을 굽히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류지복 기자 jbry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