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현지시간) 밤 뉴질랜드 오클랜드문화센터에 올려진 뮤지컬 '미녀와 야수'를 관람한 뉴질랜드 동포들은 여주인공이동포 소녀 최우진(14) 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지난 97년 이민, 현지 적응을 위해 뮤지컬 ACMT단원으로 들어간 최 양이 '미녀와 야수'의 여주인공으로 뽑혀 공연팀 안무 지도 등 1인 2역을 거뜬히 소화해냈기때문이다. 엡손 여자공립학교에 재학 중인 최 양은 ACMT 차기 작품인 '사운드 오브 뮤직'여주인공 역으로도 이미 내정돼 내년 3월부터 오디션과 함께 본 연습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번 '미녀와 야수' 공연과 관련, 최 양은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어요. 기대하지 않았다기보다는 생각도 못했죠. 더블 캐스팅 된 다른 여주인공이 나이도 많고,미국인 연출자가 직접 데려왔기 때문에 당연히 주인공이 될 것이라 믿었다"며 "그래서 더욱 열심히 했다"고 동포신문인 뉴질랜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출연진만 200명이 넘는 대형 무대에서 최 양은 40세 미국인 단원을 지도하는 등나이 어린 동양인에게 지도를 받는다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 있던 배우들을 효율적으로 통솔하며 공연을 성황리에 끝냈다. "강한 자극과 훈련이 오히려 자신을 더 발전시키고 행복하게 한다"고 말하는 최양은 매일 자정이 다 돼서야 끝나는 야간연습을 하고도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게 학교수업에 들어가는 '악바리'로 소문이 나있다. 또 공연 연습 중 역할 획득에 실패한 몇 명의 아시아계 단원들이 최 양을 찾아와 "연출자로부터 인종차별주의적 처우를 당했다"며 "너 역시 그런 경험이 있었느냐"고 물어오면 최양은 오히려 "자신의 능력을 되돌아 보라"고 충고하는 배짱도 있다. 최 양은 "종종 연출자의 강도 높은 훈련을 받다 보면 혹시 이것이 내가 아시아출신이기 때문에 받는 불평등한 대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며 "하지만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더 뛰어난 능력으로 배역을 따낼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말했다. 최 양은 언뜻 뮤지컬밖에 모르는 소녀로 보일지 모르지만 음악과 무대지도, 법학 등 아직은 하고 싶은 게 많은 평범한 또래 학생이다. 최양의 모친인 김영자 씨는 "나이 어린 딸의 진로가 부모에 의해 혹은 어떤 조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며 "딸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뒤에서후원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ghwa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