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대학들이 총학생회장 선거로 분주하다. 이미 서울대가 총학생회장 투표를 치른 가운데 나머지 주요 대학들도 이번 주 중 총학 선거를 치를 예정다. 몇년 전부터 두드러지기 시작한 `권(운동권)' 후보 대 `비권(비운동권)' 후보의 대결구도도 여전하고, 공약에서도 과거 학생회의 정치적 이념 편향에서 벗어나 학생복지 등 학생 권익이나 학습권 확보에 더 신경쓰는 등 변화가 엿보인다. 그러나 정작 일반 학생들의 관심은 갈수록 저조해지고 있어 `학생회의 새 정체성 모색'이란 숙제를 대학가에 안겨주고 있다. ◆`운동권'대 `비운동권' 구도 = 주요 대학들의 경우 흔히 민중민주(PD)나 민족해방(NL)으로 불리는 `운동권' 진영과 상대적으로 이념성이 탈색된 `비권' 진영에서 나란히 출마해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다. 연장투표에 들어간 서울대의 경우 PD로 분류되는 `렛츠 투데이-당신이 기억하는 대로'와 NL계열의 `원 코리아'를 비롯, `학교로 한 걸음 더'와 `서울대생 학교로 돌아오다 2탄! 같이 볼래?'라는 비권 2팀 등 모두 4개 선거본부가 경쟁중이다. 특히 비권이었던 지난 총학이 좋은 평가를 받는 등 `인기'를 누리면서 올해는 처음으로 비권 후보가 둘이나 출마했다. 공약은 공통적으로 교육환경 개선이나 학생들의 후생복지 등을 내걸었으며 운동권은 파병 등 민감한 정치적 현안까지 문제 삼고 나섰다. 오는 26∼27일 투표를 벌이는 연세대는 3개팀이 출사표를 냈다. NL계열의 `우리, 하늘을 달리다'와 PD계의 `선공후사(先攻後史)', 비권계인 `대학, 당신이 원하는 만큼'이 경쟁 중이다. 연세대는 특히 올해 처음 선거권자의 명단을 컴퓨터 데이터베이스화한 전자 선거인 명부를 도입하기로 했다. 고려대도 세 후보가 출마한 가운데 26∼27일 총학 선거를 치를 예정이다. NL계열의 `해피 투게더', PD계열의 `라이트 투데이(Write Today)', 비권 계열의 `당신의 상식에서 배우겠습니다 3290-1842' 등이 출마했다. 이중 `3290-1842'는 총학생회실 전화번호. 선거공약은 △부족한 열람실 해결 △학교 공간문제 해결 △좋은 수업 만들기 △사물함 구입 △청년실업 문제 해결을 위한 박람회 개최 등 주로 학생들의 일상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비권인 `당신의 상식...'은 한총련 해소를 주장하겠다는 이색 공약도 내걸었다. 서강대는 NL계열의 `살고 싶은 미래! 거침 없는 우리! 서강 ING'가 단독 후보로 출마하며, 오는 26∼27일 투표를 실시한다. 평양 교원대와의 학술교류 추진이나 대동제를 봄과 가을에 두 차례 치르겠다는 등의 공약이 눈에 띈다. 이화여대도 `크랭크 인 이화'(NL), `허브! 허브(Hub! Herb) 이화'(PD), `샤인(Shine(비권) 등 모두 세 팀이 26~27일 담판을 짓는다. 한양대는 지난 2001~2002년 2년 연속 비운동권 총학생회를 배출한 현 `소명'(소리없는 99%의 명예혁명) 학생회와 계열이 서로 다른 한총련 선거운동본부 소속의 후보 진영 2개팀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 학생들 관심 저조 = 서울대는 지난 19일부터 3일간 총학 선거를 치렀지만 투표율이 33.4%에 머물러 24∼25일 연장투표에 들어갔다. 재학생 가운데 50% 이상이 투표를 해야 투표 결과가 유효하기 때문. 이 같은 투표율은 총학이 부활한 지난 84년 이래 가장 저조한 것으로, 선거 기간에 날씨가 추워진 데다 비가 오는 등 `악재'가 끼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학생회에 대한 학생들의 무관심을 상당 부분 반영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건국대나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 한양대는 물론 단독후보가 출마한 서강대 등 나머지 역시 현재 이틀씩으로 예정된 투표만으로 유효 투표율인 50%를 넘길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들이 많다. 특히 서강대는 단독 출마로 유효 투표율이 33%에 불과한 데도 연장 투표에 들어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대부분 대학들은 하루, 이틀씩의 연장투표 기간을 이미 계획하고 있지만 연장투표에서도 유효 투표율을 못 채워 내년 3월로 선거가 연기될 것이란 우려도 나오는 상황이다. 이 같은 학생회 선거의 침체 분위기에 대해 대학 관계자들은 일단 학생회에 대한 관심 자체가 줄고 학생들이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진 데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취업난 등의 현실이 학생회에 대한 관심을 더 느슨하게 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연세대 관계자는 "선거 분위기가 영 뜨지 않고 있다"며 "과거의 예를 봐도 올해 역시 연장투표에 들어갈 것 같고, 이 마저도 안 되면 내년 3월로 넘어갈 듯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학생들의 무관심에는 학생회가 학내 복지에 관심을 갖지만 여전히 강한 정치적 색채와 잦은 집회 등에 식상한 측면이 있다"면서 "쉽지는 않겠지만 학생회도 새 국면을 모색해야 할 시기가 왔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전통적인 운동권 대신 비권이 학생회의 대세를 장악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정성호.임주영.이 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