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서울지법 형사3단독 직원들이 서울 서초동 한 은행에서 권노갑씨 비자금에 대한 현장검증의 첫단계로 2억(왼쪽)과 3억을 담은 상자의 무게를 재고 있다. 2억은 23.2kg,3억은 34.7kg의 무게이다.


`현금 50억' 승용차 달릴 수 있을까


`현금 50억원이 담긴 상자가 다이너스티승용차에 모두 실릴까, 또 이 현금을 실은 승용차가 정상적으로 운행될까' 현대 비자금 200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의 재판을 맡은 서울지법 형사3단독 황한식 부장판사는 21일 이색 현장검증을 실시했다.


재판부는 현금 40억~50억원씩을 승용차로 전달했다는 검찰 공소사실과 이정도의돈을 실은 차가 제대로 운행되기 어렵다는 변호인측 주장을 4단계에 걸친 검증으로짚어나갔다.


이날 현장검증에는 검사 2명과 변호인 3명이 나와 서로 인사했고 권씨는 오지않았다.


첫번째 검증은 이날 오전 10시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내 모 은행 지점 2층 회의실에서 은행이 준비한 현금 5억원으로 2억원과 3억원이 상자에 들어가는지 시험해보고 상자 무게를 재는 것. 법원이 주문제작한 상자에 돈다발을 세워서 넣자 2억원이 다 들어가지 않았지만눕혀서 넣자 모두 들어갔다.

잠시 긴장했던 검사들의 표정이 풀어졌다.


3억원짜리 상자도 돈다발을 이리저리 세우고 눕히는 등 세차례 시도끝에 만들었고 상자 크기가 문제될 수 있다는 지적에 재판부는 상자 길이도 재기로 했다.


2억원짜리 상자는 23.2㎏, 3억원짜리 상자는 34.7㎏. 변호인은 "검찰은 2억원짜리 상자가 23.4㎏이라고 했는데 검증결과는 그보다 검찰에 더 유리하게 나왔다"고 말했다.


일행은 곧바로 서울지법 가동 2층으로 옮겨 현금상자를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다.


현금 50억원을 마련할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한 재판부는 복사지를 상자에 채워무게를 맞추는 방법을 고안했고 법원 직원 6명의 도움을 얻어 17만5천장의 복사지가준비됐다.


재판부는 오후 2시30분부터는 서울지법 앞마당에서 상자를 다이너스티 승용차에싣는 검증과 상자를 실은 승용차를 법조타운 주변에서 주행하는 검증을 실시한다.


재판부는 다이너스티 리무진을 구할 방법이 없어 어렵사리 현대상선에서 임원이타던 다이너스티 승용차를 제공받았고 운전기사도 양측의 시비를 막기 위해 법원이직접 뽑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연합뉴스) 류지복 김상희 기자


'현금50억' 현장검증까지 재판부 고심흔적 '역력'


종이상자에 담긴 현대비자금 200억원이 승용차편으로 4~5차례 걸쳐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에게 전달됐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현장검증이 실시되기까지 재판부가 고심한 흔적이 곳곳에서 엿보였다.


변호인측은 당초 "현금 50억원을 실제로 승용차에 싣고 현대백화점 뒷길까지 가보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그렇지 않아도 현금 강탈사고가 잇따르고 있던 즈음이라 재판부가 난색을 표했지만 변호인이 무죄를 강력히 주장하고 검찰측도 "못할 것도 없다"는 입장을 보여 검증방법은 추후 결정하기로 하고 변호인측 요청을 받아들였다.


변호인측이 "현금은 상자 샘플을 만드는 데만 사용하고 같은 무게의 종이로 상자를 채워 승용차로 나르면 된다"는 아이디어를 내 '사고' 부담은 줄었다.


재판부는 법원 근처 은행에 협조를 요청, 현금 5억원을 잠시 빌려 상자에 2억원과 3억원씩을 넣어봤다.


은행에서는 무이자로 거금을 빌려준 셈이다.


재판부는 현금 대용으로 A4용지 10만장, A3용지 5만장, B5용지 2만5천장 등 17만5천장의 종이를 준비했다.


상자는 45개는 법원이 특별히 주문제작했고 저울은 저울 제작업체에 협조를 구해 빌렸다.


현금을 나르는데 이용됐다는 다이너스티 리무진이 판매가 중단돼 현대상선 측에협조를 구해 어렵게 임원이 타던 다이너스티 승용차를 협조받을 수 있었다.


2억원 상자와 3억원 상자를 만들 때는 극히 일부 취재진에게만 취재를 허용했다.


상자안에 정확한 무게의 종이를 채우기 위해 비닐봉지에 모래를 담아 상자 안에넣었고 저울에 올릴 때는 테이프 무게까지 감안해 모래를 일부 덜어내기도 했다.


직원 12명이 이날 오전 내내 상자에 종이를 담아 저울에 재고 테이프로 붙였다.


재판부는 검찰과 변호인측 주장을 모두 감안, 2억원 상자와 3억원 상자로 승용차에 40~50억원을 실을 수 있는 경우의 수 표도 준비했다.


신라호텔에서 이뤄진 현장검증에 수십명의 취재진이 몰리는 바람에 고생했던 재판부는 이날은 아침 일찍부터 포토라인을 설치했지만 내외신 기자들은 물론, 방송연예 프로그램 제작진까지 몰려 '성황'을 이뤘다.


이날 검증에 참석한 검찰측 관계자는 "도대체 이런 검증을 왜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며 볼멘 소리를 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상희 기자 lilygardener@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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