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7년 외환위기로 국내 금융권에는 구조조정이란 강력한 태풍이 불어닥쳤다. 이로 인해 대규모의 인력감원과 은행간의 합병이 이루어지면서 은행권에는 계약직으로 불리는 비정규직 인원이 크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외환위기 당시 은행권 종사자는 총 12만9,037명이고 이 가운데 1만5,043명(12%)이 비정규직이었다. 그러나 지난 6월 말 현재 금융노조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은행권 종사자는 총 13만6,812명이고 이중 정규직은 70.2%인 9만5,976명, 비정규직은 29.8%인 4만836명으로 집계됐다. 외환위기를 거치며 구조조정에 들어간 은행권은 비정규직 인원을 2.7배 이상 늘린 셈이다. 귀족노동자? 서민노동자? 지난 6월 조흥은행의 전면파업으로 은행을 찾은 고객들이 상당한 불편을 겪었던 적이 있다. 당시 은행을 찾았던 고객들 가운데 일부는 “돈 많이 받는 귀족노동자가 무슨 파업이냐”, “서민을 볼모로 한 이기주의”라며 볼멘소리를 내기도 했다. 전국에서 올라온 조흥은행 노조원들의 파업으로 각 영업점에서는 예금인출 사태가 벌어지면서 업무가 폭주했다. 그러나 이때 파업에 참여하지 못하고 창구를 지킨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계약직인 비정규직 은행원들이다. 금융노조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현재 은행 종사자 가운데 29.8%인 4만836명이 비정규직 신분으로 일하고 있다. 이들이 받고 있는 임금은 정규직 연봉(3,717만원)의 46%로 보통 1,730만원의 연봉을 받고 있고, 월급여로는 정규직(295만원)의 41%인 122만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1년차 연봉은 1,100만~1,200만원으로 정규직의 절반에도 못미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인터넷 연봉공개 사이트인 페이오픈(www.payopen.co.kr)에 따르면 은행의 정규직(대졸자) 초임은 2,900만원, 대리급(대졸자 3~4년)의 경우는 3,700만원으로 드러나 비정규직 연봉과 상당한 차이를 나타냈다. 정규직 초임과 비정규직 1년차의 연봉을 비교하면 무려 3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4,500여명의 비정규직 은행원들이 활동하고 있는 다음카페 ‘전국 은행 계약직모임’에 따르면 비정규직(텔러)의 월 평균급여는 110만~120만원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은행에서 서무업무 등을 맡고 있는 비정규직의 월급여는 80만~90만원대로 드러났고 파트타이머로 일할 경우에는 이보다 더욱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 조재환 의원의 국감 자료를 보면 시중은행 가운데 비정규직 연봉이 가장 낮은 곳은 하나은행(1,570만원)이었고, 가장 높은 곳은 우리은행(2,304만원)으로 드러났다. 단순 업무냐, 전문적 업무냐 비정규직의 경우 대개 창구, 콜센터, 채권회수, 카드영업, 서무분야 등에서 제한된 단순업무를 취급하고 있어 정규직보다 월급이 적다는 것이 은행측 인사담당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주장은 이와 정반대. 비정규직들은 은행에서 정규직과 다름없는 중요한 일을 담당하고 있는데 정작 급여는 정규직이 배 이상 많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은행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김모씨는 “창립기념일이라 창립기념 보너스가 나왔다는 소리를 듣고 기뻐했는데 정규직에게만 나오고 우리에게는 수건 한장도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모씨는 “정규직은 때 되면 각종 보너스와 각종 수당이 쏟아지는 데 반해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계약직에게는 10원 하나 없다. 정규직은 구두가 닳지도 않았는데 제화비가 나오고 우리는 신발을 벗고 다니라는 것인지 구두티켓도 없다”고 밝혔다. 반면 정규직 박모씨는 “정규직이기 때문에 비정규직에 대해 뭐라고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지만 그들을 돕자고 나설 수도 없는 게 우리들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은행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처우는 현격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비정규직은 1년 단위로 근로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해고가 자유롭고 임금 인상률은 매우 낮은 것이 특징이다. 때문에 사측에서는 정규직 1명을 고용하는 것보다 비정규직 2~3명을 고용하는 것이 인건비 절감은 물론 노동력 증대에도 효과적인 것은 틀림없다. 금융노조 비정규직특별위원회 박창완 국장은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와 사측의 노력이 절실하다”며 “비정규직 노동자가 가장 바라고 있는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지원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은행원들을 바라봤던 일반인들의 시선은 부러움이 대다수였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바라보고 있는 은행원들은 대부분이 창구업무를 하는 직원들이고 그 직원들의 대다수가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점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은행뿐만이 아니라 모든 직종에서 정규직 노동자와 거의 같은 일을 하면서도 정규직에 비해 절반의 임금을 받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과 정부의 지원책이 필요한 때다. 허우영 기자 kp119@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