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의 이른바 `조선족 거리'. 정부의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 단속을 하루 앞둔 16일, 중국동포가 집단적으로모여 사는 `조선족 거리'는 그야말로 눈에 띄게 한산했다. 집세가 싼 `쪽방'을 중심으로 중국동포가 `둥지'를 튼 이곳 일대는 평소 일요일이면 오랜만에 휴식을 즐기려는 중국동포와 외국인 노동자들로 활력이 넘쳐났었다. 그러나 일제단속을 앞두고 많은 불법체류자가 고향으로 돌아간 데다 상당수의잔류 외국인 역시 잔뜩 웅크린 채 몸을 숨겨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또 `건설일용직 모집', `철거인력 모집' 등 구인 전단 사이로 `즉시 입주', `빈월세방' 등 세입자를 구하는 전단이 건물 곳곳에 나붙어 외국인 노동자 `엑서더스'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 썰렁한 조선족 거리 = 외국인 노동자들의 엑서더스는 우선 이곳 상인들이 하소연하는 불황의 어려움에서 엿볼 수 있었다. 외국인 노동자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데다 남은 외국인마저 꼭꼭 숨은 탓에 가게를 찾는 고객이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합법적으로 남은 사람 대부분은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돼 아직 돈 쓸 여유가 없는 외국인 근로자여서 장사가 안 된다는 얘기도 있었다. 이곳에서 국제전화카드와 복권 등을 파는 30대 아주머니는 "평소 주말과 달리보다시피 손님들이 거의 없다"면서 "예전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친다"고 조선족 거리의 분위기를 전했다. 1년 전부터 S중국음식점을 운영하는 김모(44.여)씨는 "붐벼야 할 저녁에도 손님이 거의 없어 몇몇 가게는 아예 문을 닫았다"면서 "우리도 장사가 안돼 일하던 아주머니에게 당분간 쉬라고 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또 "불법체류자 중 출국하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대개 시골에 내려갔다고 들었고, 나머지는 집에 들어앉아서 안 나오겠다고 하더라"라면서 "다들 전화카드를 잔뜩 사서 어딘가로 도망하거나 숨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체류 3년 이상 4년 미만인 외국인들은 출국을 놓고 고민을 많이 했다"면서 "우리 조카도 3년이 넘었는데 과연 재입국할 수 있을지 불확실해 한참 고민하다가 일단 출국했다"고 덧붙였다. 엑서더스의 흔적은 부동산 업소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20년째 부동산 중개업을 해 온 50대의 백모씨는 "단속 얘기가 나오기 전까진 방이 꽉 찼는데 요새는 15% 가량이 비었다고 보면 된다"면서 "한 집에 방이 보통 10∼20개 있는데 그 중 1∼5개가 비어 있다"고 엄살을 떨었다. 월세와 전세방을 내주고 있는 60대 아주머니는 "이제는 방을 찾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서 "방세를 안 내고 방문을 걸어 잠근 채 사라진 사람들도 많아 속상하다"고 말했다. 또 이곳 동포사랑교회의 이순기(38) 전도사는 "이 동네 유동인구가 평소 30% 수준으로 줄었다"면서 "단속을 피해 한국인 동네로 거처를 옮기거나 시골로 내려간 사람이 많고 이 동네에는 합법체류자만 남은 상태"라고 전했다. 이 교회에 다니는 40대 중국동포 아주머니도 "요새 이 동네에서 짐 싸들고 시골내려가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도 개인택시를 불러 짐보따리들을 잔뜩 실은 뒤 어딘가로 향하는 남성중국동포도 있었다. ◆ 숨고, 도망하는 불법체류자 = 정부의 단속방침에도 외국인 노동자 상당수는불법을 감수하고 체류하기로 했다. 뾰족한 대책은 없지만 일단 집에 숨어서라도 버티는 데까지 버텨보고 혹시 걸리면 그 때 나가겠다는 생각이다. 딱한 사정을 호소하며 도움을 청하는 조선족동포도 있었다.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무단장(牧丹江)시 출신으로 한국 체류 7년째인 김모(43.여)씨는 "그간 고향의 시아버지가 당뇨로 고생하면서 병원비를 대느라 돈을 제대로 못 벌었다"며 눈시울부터 붉혔다. 김씨는 "작년에 시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남은 애들 뒷수발이라도 할 수 있게딱 1년만 더 있게 해 주면 얼마나 고맙겠느냐"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함께 왔던 남편은 지난 5월 단속에 걸려 강제출국 됐다"면서 "지금은 인천에서 공삿일을 하고 있지만 단속이 심하면 집에 숨어지내는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또 중국동포 정모(46)씨는 "한국에 온 지 5년이 넘었는데 단속 때문에 겁이 나일은 못하고 집에서 지내고 있다"면서 "단속을 어떻게 피할지 별 대책은 없지만 돈을 못 벌었으니 귀국을 못 할 수밖에 없다"고 푸념했다. 정씨는 또 "떼돈 벌어갈 욕심은 없고 조금 모아서 부모님과 자식들이랑 함께 살면서 생활비로나 쓰고 싶다"면서 "얼마나 숨어 있어야 할지 몰라 고향에 생활비도안 보내고 임시로 먹을 것을 사다 놓고 집에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동포 김모(32.여)씨는 "1천만원을 내고 산업연수원생으로 왔는데 소개해 받은 회사 월급으론 몇 년을 일해도 빚을 못 갚을 판이어서 결국 불법체류자가 됐다"면서 "보름 전 다니던 식당에서도 불법체류자니 나가라고 해서 나왔는데 가진 돈마저 없어 막막하다"고 딱한 사정을 털어놓았다. 그는 또 "투신자살한 외국인 노동자의 얘기를 듣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른다"면서 "마음 같아선 사람 대우도 못 받는 이곳을 떠나 고향에 가고 싶지만 고향의 나이 드신 부모님과 동생들 생각에 그러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요샌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악몽만 꾼다"면서 "이젠 빚을 대충 갚은 만큼 조금만 돈을 더 벌어 돌아갈 수 있게 한국 정부가 봐줬으면 좋겠다"고 정부의 선처를 호소했다. 이순기 전도사는 "불법체류자들을 보면 도망자처럼 얼굴에 잔뜩 불안감이 서려있다"면서 "정부가 이들의 자유왕래를 허용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기자 sisyph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