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복지공단 노동조합은 지난 4월 울산 남부경찰서에 현대자동차 민주노동자투쟁위원회 의장 등 9명을 형사고발했다. 민투위는 현대차의 공식노조가 아닌 비공식 현장노동자들의 조직단체. 근로복지공단 노조는 이들이 울산지사를 무단침입,사무실을 무단점거하고 집기를 파손하면서 직원들을 위협했다고 주장했다. 근골격계 질환자의 신속한 산재승인 업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산업현장의 새로운 노사현안으로 떠오른 근골격계 질환은 올해 들어 이처럼 노-노간 갈등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근골격계 질환은 아직 공식적인 '직업병'이 아니다. 대부분의 기업들도 '비사고(非事故)성 재해'로 분류하고 있다. 근골격계 질환자의 산재인정을 둘러싸고 엉뚱하게 노-노간 갈등까지 벌어진 것은 무엇보다 명확한 산재판정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산재 판정의 어려움을 호소하기는 의료계도 마찬가지다. 연세대 재활의학과 한 전문의는 "최근 근골격계 질환으로 판정받는 사례가 늘어난 것은 작업 환경이 열악해졌다기보다 90년대 말 이후 선진국의 기준을 받아들여 이 질환을 광범위하게 산재로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일반적인 질병과 구별하기 어려운 데다 명확하게 업무상 인과관계를 밝혀내기가 의학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고려대 환경의학연구소 최재욱 박사는 "구체적인 작업 내용 및 작업환경과 같은 현장 근로 조건뿐만 아니라 근로자의 신체조건 자세 등 복합적 요인에 따른 질환의 원인을 따져봐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근로복지공단측의 형식적인 재해조사도 근골격계 환자의 증가 원인으로 꼽힌다. 근로복지공단은 인간공학 전문가의 견해 없이 의사 소견서 및 작업장 촬영 사진만으로 산재요양 승인을 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1월 B사의 노조가 조합원 33명에 대해 집단으로 근골격계 질환 산재요양 신청을 한 뒤 불과 1주일만에 31명에 대한 산재요양 승인이 이뤄졌다. B사 관계자는 "조사인력도 비전문가로 구성된 상태에서 몇시간 만에 형식적으로 현장조사가 실시됐다"며 "노조의 외압에 의해 산재승인이 이뤄지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산재 승인율이 지나치게 높은 것도 문제다. 독일의 경우 2001년 전체 근골격계 질환의 산재 인정률은 5.9%에 불과하다. 스웨덴은 근골격계 질환을 작업성 질환으로 폭넓게 인정해오다 산재보험기금의 비축을 위해 93년 인정기준을 아주 좁게 만들어 산재 승인율이 90%에서 30%로 대폭 줄어들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요양 신청건의 90% 이상이 산재로 인정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올해 1월 현대삼호중공업에서는 33명이 요양 신청해 31명이 승인을 받았다. 두산중공업에서도 산재를 신청한 26명 전원이 승인을 얻었다. 현대자동차도 지난 4월 28명이 집단 요양 신청을 해 27명에 대한 승인이 나기도 했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또 다른 문제점은 근골격계 질환 산재환자의 요양이 갈수록 장기화되고 있는 것. 지난 6월 현재 근골격계 질환 산재요양을 받았던 근로자수는 6백53명,환자 1인의 평균 요양일수는 5백18일이다. 요양 후 복귀자들의 평균 요양기간은 약 17개월에 달한다. 이는 개인상병에 비해 무려 8.5배나 길다. 요양기간이 1∼2년 미만이 전체의 33.4%로 가장 많으며 이어 6개월 미만이 29.7%,6개월 이상∼1년 미만이 16.8%를 각각 차지했다. 집단 요양신청이 급증하자 근로복지공단도 몸살을 앓고 있다.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의 산재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근로복지공단 통영지사의 근무인원은 4명뿐.관계자는 "복지공단에서 산재판정을 위한 조사는커녕 서류처리도 제때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보다 앞서 근골격계 질환의 홍역을 겪었던 일본의 경우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기 위한 구체적 병명과 인정요건,운용기준을 산재보상법에서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경총 관계자는 "일본의 경우 산재대상의 범위와 증상 장애 진단 보상기준 등 세부사항까지 구체적으로 규정해 시비를 차단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하루 빨리 이같은 기준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