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의 수출증진을 위해 수출보험공사가 운영하고 있는 수출신용보증제도의 허점을 악용, 모두 5천만달러(5백94억원)의 수출보험기금을 가로챈 사기범들이 3일 검찰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특히 여기엔 기금 운용을 담당하는 수출보험공사 직원들도 적극 가담한 것으로 알려져 일부 공기업 직원들의 기강해이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밝혀졌다. ◆ 수출 사기범 대거 적발 =서울지검 외사부는 지난 5개월간 수사를 통해 수출보험기금을 가로챈 20개 업체를 적발, 전 수출보험공사 단기사업3팀장 김모씨(44)등 수출보험공사 간부 2명을 포함한 10명을 사기와 배임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또 K섬유 대표 신모씨(42) 등 5명을 불구속 기소하고 미국으로 달아난 H사 대표 이모씨(42) 형제 등 7명을 지명수배했다. 민유태 부장검사는 "이들 사기범은 수입지 은행이 지급을 담보하는 신용장(LC) 방식의 거래와 달리 중소기업이 해외기업과 수출계약을 맺으면 수출보험공사가 해당기업에 발급해 주는 수출신용보증서를 악용해 화환(貨換)어음을 거래은행에 제출, 수출대금을 미리 지급받을 수 있는 외상수출방식(DA)의 허점을 노렸다"고 밝혔다. ◆ '유령회사 만들고, 쓰레기 수출하고' =사기범들은 일단 수출계약을 체결하고 은행 대출을 받고난 뒤 정상거래 여부에 대해 실사하는 기간이 6개월∼1년가량 걸린다는 제도상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이모씨(42) 형제의 경우 지난해 5월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필리핀 회사와 허위 수출계약을 체결한 뒤 환어음을 발행, 이를 매각하는 수법으로 모두 47차례에 걸쳐 2천91만달러(한화 2백48억원)를 챙긴 뒤 미국으로 달아났다. 또 해외업체와 짜고 쓰레기 물품을 수출한 뒤 환어음을 은행에 제시하고 수출대금을 챙긴 일당도 붙잡혔다. T사 대표 박모씨(48)는 홍콩 업체와 짜고 수출계약을 체결한 뒤 상품가치가 전혀 없는 여성용 액세서리를 수출했으며, K사 대표 신모씨(42)도 중국 회사와 섬유원단 수출계약을 체결하고는 실제로는 빈 상자와 쓰레기 등을 수출해 수십만달러를 챙겼다. H사 이모 전무(48)는 일본회사에 쇳가루 7백만엔 가량을 수출한 것처럼 가짜 선하증권을 만들어 수출대금을 챙기는 등 4회에 걸쳐 2천4백만엔을 가로챘다. ◆ 허점투성이인 기금운용 =검찰은 수출보험공사측이 서류심사만으로 수출 기업에 대해 수출신용보증서를 발급해 주고, 형식적으로 해외 수입업체의 신용도를 평가하는 것이 이같은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또 수출보험공사가 수출신용보증서를 발급해 주면서 물적담보가 아닌 연대보증 등 인적담보만을 요구하는 점을 이용, 일부 사기조직의 경우 아무런 권한이 없는 '바지사장'을 대표로 내세워 대출금 회수에 어려움이 많은 문제점도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수출사고로 인한 수출보험공사의 지출액은 한해 평균 3천억원 가량에 이르지만 회수율은 20%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출보험공사 관계자는 "매년 이뤄지는 50만건의 지원건수를 하나하나 세세히 살펴보는 건 불가능하다"며 "10만∼20만달러의 소액 지원까지 보증심사를 강화할 경우 수출 활로가 가로막힐 우려가 있다"고 해명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