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3일 SK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들로 대선 자금 수사범위를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하자 주요 기업들은 태풍전야의 정적에 빠져들었다.


기업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특별히 할 말이 없다" "우리는 떳떳하다"는 선에서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정치자금 수사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몰라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특히 검찰이 '단서에 따른 무제한 수사를 원칙으로 한다'고 밝히면서 1차 타깃으로 떠올랐던 5대 그룹(삼성 LG 현대차 SK 롯데) 뿐만 아니라 10대 그룹은 물론 그 외의 기업들도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재계는 지난 12일 "대가성 없는 정치자금의 경우 해당 기업에 대한 사면을 검토할 용의가 있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전향적인 의견으로 받아들이면서도 막상 사태가 그같은 방향으로 수습될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SK의 비자금 사건이 대형 '정치 스캔들'로 비화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정치자금이라는 사안의 성격이 해당기업에는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 우려되는 최악의 시나리오


지난 95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역사 바로세우기' 결과로 나타난 것은 검찰에 의한 대기업 총수들의 줄소환이었다.


당대의 내로라하는 기업 총수들이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거액의 비자금을 건넸다는 혐으로 모두 불려와 조사를 받았고 대부분 기소됐다.


검찰이 "이번 수사의 초점은 기업이 아니라 정당"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주요 기업들은 사건 위주로 판단하는 검찰의 생리와 정치권의 적대적인 구조를 감안하면 결국 불똥을 맞는 것은 자신들이 될 것이라며 걱정하고 있다.


노 대통령의 사면 검토도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그 어느 나라보다 반(反)기업 정서가 강한 국내 현실에서 여론이 과연 기업들을 사면해 줄지 미지수인데다 일부 시민단체와 소액주주 등도 사면에 반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형사 소추를 면한다고 해도 시민단체와 소액주주들이 민사 소송을 제기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번질 수밖에 없다.


한 그룹의 임원은 "검찰이 방향을 잘못 잡으면 기업들은 투자의욕 저하와 함께 대외 신인도 추락으로 국제무대에서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할 것"이라며 "나라가 '투자의 천국'은 커녕 '검찰 공화국'으로 가서야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 "속전 속결이 최선"


주요 기업들은 기왕 수사확대가 이뤄진다면 기업들이 정치자금 스캔들에 몇달씩 발목이 잡히지 않도록 조기 종결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다.


불법행위에 대한 단죄 여부 역시 재발방지를 위한 전향적인 틀 속에서 결정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규황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는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사가 조속히 마무리돼야 한다"며 "이번 대선자금 문제를 계기로 근본적인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김영배 전무도 "지금 우리 경제는 경기침체-불안한 노사관계-대선 비자금 수사라는 3대 악재를 만나 휘청거리고 있다"며 "시간을 끌수록 경제는 더 나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조일훈ㆍ장경영 기자 ji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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