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과 경찰이 올들어 범죄 피해자 보호에 각별한 관심을 쏟고 있다. 검.경의 이 같은 움직임은 피의자 인권보호 중심으로 전개돼 온 인권논의에 큰영향을 줄 수 있어 주목된다. ◆ 검.경, `피해자 보호'에 관심 = 경찰청은 지난 9월 `인권 매뉴얼' 1호로 「범죄피해자 보호 제도-알아두면 도움됩니다」를 발간, 배포한 데 이어 본격적인 피해자 보호 제도 정비를 추진중이다. 이와 관련, 경찰청 수사국 관계자는 2일 "각 부서별로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연구중"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한발 더 앞서가고 있다. 울산지검이 지난 7월 여성 검사와 민원담당 검사 등으로 이뤄진 `피해자 상담실'을 전국에서 처음으로 운영하기로 했고,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거나 보복이 두려운피해자를 위해 별도의 `피해자 조사실'을 설치하기로 했다. 강금실 법무부 장관도 지난 9월 대전고.지검을 방문한 자리에서 `범죄 피해자지원센터' 설립 준비작업을 예로 들며 "범죄 피해자 보호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 보호 대상 확대 = 국민의 정부 때에도 여성.아동 범죄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움직임은 있었다. 검.경 모두 여러 곳에서 여성.아동조사 전담실을 운영하고 있고 최근에는 성폭력 피해아동이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피해를 반복 진술하는 폐해를 막기 위해 `비디오 녹화진술' 제도를 본격 시행중이다. 하지만 검.경이 올들어 관심을 보이는 피해자 보호는 여성과 아동처럼 특정 대상층이 아니라 일반적인 피해자 모두에 해당하는 특징이 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60∼70년대부터 범죄 피해자 보상제도를 마련하고, 범죄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민간단체 활동 또한 활성화돼 왔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난 1987년에야 헌법에 범죄 피해자 구조 청구권과 형사절차에서 의견 진술권 규정을 포함시켰고, 같은 해 범죄 피해자 구조법도 제정했다. 지난 1992년에는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피해자 학회가 창립됐으며, 2000년 9월에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일본 등의 전문가를 초청해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 피해자 보호 현황 = 검찰과 경찰은 언론 등에서 인권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입버릇처럼 "피의자만 인권이 있는 게 아니라 피해자 인권도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법기관 스스로 피해자를 기껏해야 참고인 수준으로 대해온 게 현실이다. 자신이 피해를 당한 사건을 신고해도 수사진행 상황을 통보받지도 못하고 수사.재판기록을 열람.등사할 권리도 법적으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형사소송에 관한 서류는 아예 공익상 필요 등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공개하지못하도록 규정해 놓고 있다. 피해자 보호 단체도 피해자학회와 한국성폭력상담소, 아동학대 긴급전화 등 일부만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을 뿐 선진국처럼 검찰과 경찰, 네트워크를 이뤄 체계적으로 보호하는 단계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최근 사건담당 경찰관이 서면 뿐 아니라 전화, e-메일 등 피해자가 원하는 방법으로 범인의 검거, 검찰송치 등 정보를 피해자에게 제공하는 제도의 도입을적극 검토하고 있다. ◆ 피해자 보호 도입 배경 = 검찰은 그동안 형사정책연구원 등을 통해 피해자보호 제도에 대해 일정한 연구 성과를 쌓아 왔고, 그 성과가 올들어 실무로 연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근대사회에서 국가가 형벌권을 독점하면서 피해자의 사적 보복을 일체 금지하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검찰이나 경찰은 단지 범인을 잡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피해자 보호 의무가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반적인 측면 뿐 아니라 김대중 정부 당시 국가인권위원회가 만들어질 정도로 수사기관에 대한 인권시비가 활발해진 데 대한 수사기관 나름의 대응이라는 측면도 있는 게 사실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인권위는 인권이라고 하면 피의자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이강하다"며 "하지만 검찰이나 경찰은 단지 인권에 신경을 쓰면서 범인을 잡기만 하면되는 게 아니라 피해자를 보호할 의무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충원기자 chungw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