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외교기관 청사에서 100m 이내의 옥외집회나 시위를 금지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관련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은 외교기관 보호라는 법익보다 헌법상 집회의 자유에 대한 침해가 더 크다고 판단한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헌재는 외교기관의 보호를 위해 특정장소를 보호하는 규정 자체가 위헌은 아니지만 '장소'가 집회의 목적과 효과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점을 고려할 때 예외없이 외교기관 인근이라는 이유로 모든 집회를 금지한 것은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반했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특히 이날 결정은 청와대나 국회, 정부청사등 그동안 집회가 금지된 '성역'으로 규정돼 왔던 다른 공공기관에서의 집회 금지조항에도 적잖은 위헌 시비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여 파장이 예상된다. 이번 헌재의 심리는 위헌 심판의 대상이 된 외교기관 청사에 국한됐지만 집회가 금지된 다른 공공기관 역시 예외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 똑같은 법리가 적용될 경우 과잉금지의 원칙 위반 소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집시법상 집회가 금지된 구역은 국회의사당, 법원, 헌법재판소, 대통령 관저, 국회의장 공관, 대법원장 공관, 헌법재판소장 공관, 국무총리 공관, 외교사절숙소 등이다.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린 직접적인 취지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이 조항이 금지장소 내에 위치한 다른 항의대상에 대한 집회마저 봉쇄할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일례로 서울처럼 대도시의 경우 금지 대상건물의 100m 반경 내에 다른 건물이 밀집된 경우가 많은데, 이때 외교기관에 대한 항의가 아닌데도 집시법 때문에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점. 지난 2000년 4월 삼성그룹 계열사로의 복직을 요구하며 서울 남대문로 삼성그룹 본사를 지나는 옥외집회를 개최하려 했지만 100m 이내에 싱가포르 대사관이 있다는 이유로 집회를 금지당했다 이날 위헌 결정을 함께 받아낸 삼성그룹 전 근로자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소규모 평화적 집회를 허용하는 예외조항이 없다는 점도 지적됐다. 재판부는 "대사관 앞에서 소수 참가자가 소음 발생없이 평화적인 피켓시위를 하는 경우 대규모 시위로 확대되거나 폭력시위로 변질될 우려가 없는 소규모 평화적 집회인데도 이를 금지하는 것은 정당화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예정된 집회가 외교기관의 업무가 없는 휴일일 경우 외교기관으로의 자유로운 출입 및 원활한 업무 보장 등 보호법익에 대한 침해가 미미함에도 예외없이 금지한 것은 과도한 제한이라는 취지도 포함됐다. 그러나 이번 결정에 따라 향후 외교기관 인근의 집회가 모두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비록 위헌 결정이 났지만 공공의 안녕질서에 위협을 가할 경우 집회를 사전.사후에 금지할 수 있다는 집시법 규정은 여전히 효력이 있으므로 이번 결정을 곧바로 외교기관 인근의 집회에 대한 전면 허용으로 해석하는 건 무리다. (서울=연합뉴스) 류지복 기자 jbry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