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정신적 충격'을 우려해 피해자가 법정 진술을 거부한 어린이 성폭력 사건의 피고인에 대해 법원이 증거 부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지법 서부지원 안승국 형사1단독 판사는 30일 미성년자 의제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돼 3년이 구형된 유치원 운영자 홍모(59)씨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해자 측은 법정 진술을 거부한 채 증거로 낸 검찰 및경찰 진술조서를 형사소송법 314조의 예외 조항으로 인정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이 사건의 경우 이 예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따라서 형사소송법상 범죄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무죄를 선고한다"고 말했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반대신문권 보장 등을 위해 피고인이 동의하지 않는 진술조서 등 전문(傳聞)증거의 증거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다만 법정 진술을 해야 할당사자가 `사망, 질병, 외국거주 및 기타 사유' 등으로 출두할 수 없고 진술조서를신뢰할 수 있을 때 한해서만 예외적으로 증거력을 인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 측은 사건 발생일로부터 5년이 지난 만큼 당시 5살에 불과했던피해자 이모(10)양이 그 때 일을 기억하지 못할 뿐 아니라 법정 진술 과정에서 기억하기 싫은 일을 기억하거나 피해자와 대면하면서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받아 정신장애가 초래될 수 있다며 이양의 경우를 형소법 314조의 `질병'이나 `기타 사유'로 인정해줄 것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재판부는 "우선 이양이 기억하지 못하느냐의 여부는 이양의 모친인 송영옥(44)씨의 진술 외에 객관적으로 인정할 증거가 없고 송씨 역시 이양에게 직접 확인한 것이 아니므로 314조에서 정한 예외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또 "법정 증언이 이양에게 정신장애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는 의사 진단서의 내용도 314조가 규정한 질병이라 보기 어렵고 기타 사유 역시 사망이나 질병에 준하는 부득이한 사유로 한정해야 하는데 장애를 초래할 위험이나 개연성이 있다는 점만으로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다만 피해자의 정신적 상태, 법정 증언 후 초래될 정신적 충격의 정도에 관해 전문가의 객관적 검증이 이뤄진 다음 그 결과를 놓고 피해자의 연령과 성별, 범죄내용, 조사 경위 등을 종합해 `기타 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할 것"이라며 이 진술조서의 증거능력 인정 가능성을 열어뒀다. 재판부는 또 "나머지 송씨 등의 진술도 증명력을 인정하기 어렵고 앞서 있었던민사소송에서는 1차례 성추행한 사실이 인정됐지만 당시 증거가 된 진술조서는 형사소송법상으로는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증거력이 없으므로 민사소송 결과를 증거로 삼을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홍씨는 지난 98년 이양을 성추행했다는 혐의로 고소된 뒤 검찰의 불기소 처분을받았으나 송씨의 끈질긴 법정 투쟁 끝에 헌법재판소의 불기소 처분 취소 결정이 내려져 지난해 12월 결국 기소됐다. 피해자 송씨는 판결이 나온 뒤 "대한민국은 가해자의 인권에만 후한 것 같다"며"나와 아이에게 당시 성폭력 사건을 되새겨주며 법정에 서라는 것은 어머니이기를 포기하라는 것과 같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검찰은 항소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기자 sisyph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