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유신체제 성립 당시부터 박정희 대통령 납치.하야 계획을 세웠고 이후 세차례나 시해계획을 세웠으나 모두 박 대통령에 대한 `정리'와 `인정' 때문에 이를 실행하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사실은 10.26사건 24주년을 맞아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고 김재규 전중앙정보부장이 대학노트 32쪽 분량으로 지난 80년 1월 21일부터의 군사재판과정, 10.26 사건에 대한 자평, 수형생활의 심경 등을 일기체 형식으로 기록한 옥중 수양록 원본이 27일 공개되면서 밝혀졌다. 김 전중앙정보부장은 수양록에서 "72년말 대통령의 3군단 시찰(당시 김재규씨는 3군단장)을 맞아 납치,햐야시킬 생각을 하고 준비를 했지만 차마 결행할 생각이 우리들의 정리 때문에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건설부장관과 중앙정보부장을 역임하며 74년 9월, 75년 2월, 79년 4월 세 차례에 걸쳐 박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권총을 품에 품고 대통령을 시해하려 했으나 이 또한 시행하지 못했고 이에 대해 자신을 질책했다는 얘기도 털어놨다. 그는 수양록 `혁명'부분에서 "마지막 방법으로 혁명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 1979년 4월 혁명을 결행하려 했으나 여건이 좋지 않아 미루다가 10월 26일 드디어 결행하고 말았다"며 "유신체제를 지탱하는 핵인 박 대통령 각하만 제거하면 다른 것은 손댈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최소의 희생으로 목적을 달성했다"고 자평했다. 그는 10.26사건의 목적으로 ▲자유민주주의 회복 ▲국민의 희생을 없애고 예상되는 불행을 예방 ▲적화(공산화) 예방 ▲미국과의 관계개선 및 경제, 외교면에서 호혜이익 도모 ▲독재국가 라는 낡은 이미지 탈피 등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이 헌법(유신헌법)이 아무리 보아도 민주헌법이 아니고 박 대통령 각하의 영구집권을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간단히 파악할 수 있었다"며 유신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반감도 드러냈다. 김 전 중앙정보부장은 이와 함께 "불교에 귀의하며 마음의 평온을 찾았다. 육신을 어떻게 다루던 알바 아니다. 마음의 본성은 공이다. 본성만 확고히 잊지 않으면세상에 아무련 두려움이 없다"는 말로 사형을 앞두고 불교에 기댄 자신의 담담함을 고백했다. 그는 또한 수양록 노트에 應無所住 而生其心(응무소주 이생기심.머문 바 없이 마음을 내라)이라는 금강경 구절을 흰색 종이에 적어 끼워놓기도 했다. 그는 끝으로 "문제는 밑에 친구들인데 무슨 방법으로든지 살리고 싶다. 법도 정상참작이 있을 법한데. 아무것도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죽는다는 것 누가 책임져야 하나"라며 '박선호,박흥주외 경비원일동, 김계원,정승화' 등 나머지 10.26사건 관련자를 모두 살리고 싶다는 마음도 적어놨다. (서울=연합뉴스) 정윤섭 기자 jamin7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