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죽어야 이 나라의 노동정책이 바뀔 수 있겠습니까? 더 이상은 안됩니다. 제가 마지막 희생자가돼야 합니다" 23일 오후 대구 성서공단 자동차 부품 생산업체인 세원정공에서 노조탄압 등에항의해 분신한 이해남(41.세원테크 노조지회장)씨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등에게 남긴 유서가 공개돼 주위를 숙연케 하고 있다. 특히 동료 노조원의 사망을 둘러싸고 사측과 대립한 이씨가 분신으로 생명이 위독함에 따라 이번 사태가 민주노총의 강경투쟁을 촉발하는 등 국내 노동계의 새로운불씨가 될 전망이다. ◇ 유서 내용 = 이씨는 유서에서 "이 나라는 노동자들과 힘 없는 사람들이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게 현실인 것 같다"면서 "노동자들과 농민들, 영세상인들,그리고 빈민들이 억압받고 핍박받으며 사는 나라가 대한민국 말고 또 어디 있느냐"고 항변했다. 그는 "대한민국 헌법 1조 `법은 모든 국민에게 평등하다'는 것은 정말로 웃기는얘기"라면서 "돈 있고 빽 있는 X들은 수천억을 해먹고도 검찰에 출두해 며칠간 콩밥먹고 나오면 그만이고, 가난하고 힘 없는 노동자들과 농민들, 빈민들은 생존권 사수를 위해 투쟁했다는 이유로 몇 년씩 구속되고, 수배되고, 가정까지 파탄나는 것이지금 이 나라의 현실"이라고 개탄했다. 그는 이어 "대통령께서는 예전에 변호사 시절 우리 노동자들을 위해 헌신적으로노력하셨던 때도 있었지만, 세원테크 사태와 관련해 몇 차례 청와대 신문고에 진정을 한 데 대해서는 여지껏 묵묵부답"이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씨는 "사측의 수많은 불법행위를 고발하고 진정했지만 회장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더라"면서 "그러나 저희들이 2년 전 노동조합을 만든 후 간부들 전체가 집행유예, 구속, 수배, 손배, 가압류 등의 피해를 당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 민주노총 강력 투쟁 =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는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이해남씨의 분신은 회사측의 계속된 노조탄압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강력 투쟁을천명했다. 민주노총은 또 "지난 8월 숨진 이현중씨의 죽음에 대해 수수방관한 세원측과 자율적 노사관계에 개입해 공권력을 남용한 검.경찰도 이씨의 분신에 책임이 있다"고강조했다. 민주노총은 24일 오후 회사 정문 앞에서 규탄대회를 열고 농성을 갖는 것을 시작으로 오는 29일 대구에서 전국 규모의 규탄집회를 가지는 등 총력 투쟁을 전개할방침이다. 민주노총 대구본부 김경희 선전부장은 "이해남 지회장의 분신은 이현중씨 죽음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고 일관되게 노조탄압을 일삼는 사측에 대한 목숨을 건 항거"라며 "앞으로 노동탄압전국대책회의 구성을 모색하는 등 강력투쟁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 노사대립 경위 = 충남 아산에 위치한 종업원 140여명 규모의 자동차부품 납품업체인 세원테크는 대구성서공단에 본사를 둔 세원그룹의 계열사로, 지난 2001년10월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과정에서 노사갈등이 시작된 이후 근 2년간 노사가 대립하고 있다. 특히 지난 8월 파업 기간에 회사정문에 설치된 바리케이드를 뚫고 노조 사무실진입을 시도하다 두개골 함몰 등 중상을 당한 노조원 이현중(30)씨가 지병까지 겹쳐숨지면서 노사대립이 더욱 극심해졌다. 노조는 지난달 1일부터 유족들과 세원테크 노조원 등이 대구본사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했으며 이에 사측은 공권력 투입을 요청, 지난달 4일 조합원 64명이 연행되고 노조간부 3명이 구속됐다. 이해남씨는 이 당시 경찰의 검거를 피했으나 업무방해 혐의로 수배가 내려져 도피생활을 해왔다. 노조측은 그동안 이현중씨 명예회복과 노조탄압 중단, 임단협 성실교섭 등을 요구하는 반면 사측은 이현중씨 위로금 지급 이외에는 노조의 다른 요구를 수용할 수없다는 입장을 고수, 지난달 17일 협상이 결렬된 이후 현재까지 대화가 중단되고 있다. 또한 이현중씨 죽음을 둘러싸고 사측은 지병인 암으로 사망했다고, 노조측은 두개골 함몰로 인해 숨졌다고 주장하며 맞서고 있다. 한편 대구 동산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이씨는 전신 3도의 중화상(95%)을 입어 생명이 위독한 상태다. (대구=연합뉴스) 문성규.이강일 기자 moonsk@yna.co.kr leek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