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융기관과 현금수송차량을 노린 강도 사건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피해 금융기관의 허술한 금품관리 체계와 직원들의 방범의식 결여가 범죄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강도나 도난 사건을 당한 금융기관은 피해액 전액을 보험회사로부터 보상받을 수 있어 굳이 큰 돈을 들여 경호원을 고용하거나 전문 현금수송인력을 이용할 필요가 없다는 `도덕적 해이'도 만연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반복되는 금융기관 사고 = 20일 오전 9시 12분께 경북 포항시 남구 연일읍 유강리 대림 2차 아파트 단지 안 모 은행 현금지급기 앞에서 현금 3억2천400여만원이 실린 현금 수송차량이 통째로 도난당했다. 은행의 용역을 받아 현금 수송을 전문으로 하는 N현금수송업체 소속인 이 차량은 당시 아파트 단지 내에 설치되어 있는 현금지급기에 현금을 보충하기 위해 정차돼 있었으며, 이 틈을 노려 주황색 트레이닝복 차림의 20대 남자 1명이 운전석 창문을 깨고 침입, 차를 몰고 그대로 달아났다. 이에 앞서 지난달 26일 오전 8시22분께 대전시 중구 태평동 모 아파트 단지 안현금자동지급기 부스 인근에서 현금 7억500만원을 실은 현금수송 승합차가 도난당했다. 또 서울에서는 지난 17일 낮 12시25분께 서울 도봉구 도봉2동 우체국에 20대 초반의 강도가 들어 현금 310만원을 털어 달아났다. 모자와 마스크를 쓴 범인은 각목을 들고 2층 우체국 건물 1층 정문으로 침입, 창구 앞에 서있던 여성 고객과 창구에서 근무중이던 이모(40.여)씨 등 여직원 2명에게 "허튼 짓 하면 쏜다"고 협박한 뒤 현금 310만원을 받아넣고 57초만에 도주했다. `서부 활극'을 방불케 하는 이 같은 금융기관 사고가 전국적으로 빈발하고 있는데도 금융기관들은 앞서 발생한 범죄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기는 커녕 "보험을 들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국민의 재산 보호에 무관심한 입장이다. ◆금융기관 보안실태 = 경찰은 지난달 26일 대전에서 현금수송 차량이 도난당하자 사흘 뒤 29일부터 지난 2주간 전국 61개 호송. 경비업체를 대상으로 일제 지도점검을 벌였다. 지도.점검 결과를 토대로 경찰은 1년 이상 도급 실적이 없는 9개 업체의 허가를 취소했으며, 경비원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은 2개 업체에 대해 경고하고, 경비원 배치 신고를 하지 않은 4개 업체에 과태료를 부과했다. 도난을 당한 현금수송차량은 2중 잠금장치를 하지 않거나 열쇠를 꽂은 채 차를비우는 등 기본수칙 조차 지키지 않아 범인들이 손쉽게 수억원대의 현금을 챙길 수있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현금수송차량뿐 아니라 은행 등 금융기관의 자체 경비실태 역시 허술하다는 지적을 낳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전국 은행, 제2금융권, 우체국 등 1만7천674개금융기관을 대상으로 보안실태를 조사한 결과 경비원을 배치한 곳은 6천632개소로전체의 37.5%에 그쳤다. 또 전문현금수송 업체를 이용하는 비율은 26.9%에 그쳐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전자현금수송 가방을 보유한 점포는 57.2%로 절반을 겨우 넘은 정도로 나타났다. 특히 소규모 출장소가 많은 제2 금융권과 우체국의 보안실태는 더욱 심각했다. 제2금융권 가운데 경비원을 둔 점포는 6.9%였고 7.2%만이 전문 현금수송업체에현금수송을 맡겼고, 전자 현금수송가방이 있는 점포의 비율은 48.2%에 그쳤다. 우체국의 경우 경비원을 고용한 곳은 18.7%로 은행에 비해 현저히 낮았고, 전문현금수송업체에 위탁해 현금을 운반하는 곳은 11.7%로 저조했다. 피해를 입은 금융기관이 수억원의 현금을 취급하고 있으면서도 경비인력 없이대부분 범인들에게 제압당하기 쉬운 여직원 2∼3명 정도만 배치한 것도 큰 문제라는게 경비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해결책은 없나 = 20일 현금을 도난당한 현금수송 업체는 경찰의 지도.점검에서 `이상없음'으로 평가받은 것으로 드러나 경찰의 지도.점검이 형식적이었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국민의 재산을 대신 맡아주는 금융기관의 각성이 필요하다는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한 손해보험회사 관계자는 "큰돈을 취급하는 은행은 `금융기관 종합보험'에 가입된 반면, 취급예탁금이 적은 새마을금고 등 제2금융권은 비용이 적게 드는 도난보험에 가입된 경우가 많다"며 "현금이 도난당해도 내부직원의 소행이 아닌 것만 증명하면 손실을 모두 보상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기관 종합보험은 해당 금융기관이 입은 손해의 일정액을 자기부담해야 되지만 도난보험은 가입금액이 1억원 미만이고 자기부담금이 없어 소규모 금융기관이 좋아한다는 것. 따라서 금융기관들은 굳이 큰 비용을 들여 도난 방지 시스템을 구축하거나 전문경비인력을 고용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상황이다. 현금수송시에도 `설마'하는 생각에 안전 불감증에 빠져 기본 수칙조차 지키지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모 외국계은행 지점장은 "미국은행에서 기본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듀얼 컨트롤시스템'을 국내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며 "자체 보안규칙이 있는데도 이를 무시하고`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느냐'는 안이한 태도로 돈을 취급하는 게 어이없는 도난.강도사고가 반복되는 이유"라고 꼬집었다. (서울=연합뉴스) 강훈상.임주영.황희경 기자 hskang@yonhapnews zoo@yonhapnews zitrone@yonha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