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독 사회학자 송두율(59.뮌스터대) 교수는 2일 오후 서울 수유동 아카데미 하우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정원 조사결과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그동안 해명 기회가 여러차례 있었는데 지금에서야 나서는 이유는. ▲오늘의 해명은 국정원에서 나흘에 걸쳐 답변한 내용을 담은 것이다. 당시에는 조사중이었고 그때 그때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일일이 정정할 수는 없어 오늘 종합적으로 조사가 끝나고 서류가 검찰에 송치된 후에야 답변하는 것이다. --북측으로부터 김철수라는 이름으로 어느 문건이나 구두발언을 들은 바가 없다고 했는데, 김형태 변호사는 지난달 29일 회견에서 "94년 방북 초청 당시 북측으로부터 `당신이 김철수라는 이름으로 초청돼 있으니 꼭 오라'는 이야기를 듣고 가게 됐다"고 했다. 어느 쪽이 맞나. ▲(김형태 변호사) 김철수라는 이름으로 초청받은 사실은 맞다. 실수로 이 회견에서 빠졌다. --북으로부터 받은 자금의 정확한 액수와 활용 용도는. ▲지난 92∼94년 3년간 매년 2만-3만달러 씩 총 6만∼7만달러를 학술지원금으로 받았는데 모두 아시아 재단의 한국연구소에 기증했다. 또 73년, 79년, 84년, 88년, 91년까지 7∼8차례의 왕복 항공비 2만달러 정도를 받아 모두 썼다. 총 액수는 7만-8만불이다. --북에서 김철수라는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사후에 인지했다는데 18차례의 방북 동안 이 지위를 거부한다는 뜻을 표시한 적이 있는가. ▲경계인으로서 최선을 다하려 했지만 개인으로서 거대한 국가체제에서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도 적었고, 쉽지 않아 내면의 갈등이 컸다. 북측을 방문했을 때도 그 체제를 100% 지지한 것도 아니고, 아무런 거리감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면 노동당 간부들이 양담배를 피우는 데 대해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다. --한국행을 결정했을 때 심경은, 국민들의 반응이 걱정되지는 않았는지. ▲그동안 정말 한국쪽으로 오고 싶었지만 여러가지 상황 때문에 오지 못했었다. 진정한 의미에서 남북 모두에 대해 연구하고 싶고, 균형감각이 깨진 사람으로 보여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40년 가까이 외국에 살아 남쪽을 머리로서는 상상해도 마음으로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예를 들어 교통지옥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곳에 와서 경험해 보고야 그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모든 경험이 결국은 언젠가는 우리 민족 사이에서 상생, 화해, 통합, 발상의 정황을 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귀국을 감행한 것이다. --진술에 모순이 있다는 이유로 여론이 부정적인데. ▲그것은 수사기관에서 진술한 전체상황이 발표된 것이 아니라 일부 사실과 편린만 밖으로 드러나면서 앞뒤 모순이 생기는 것이다. --한국에 남고 싶다는 말이 전해지는데, 이후 계획은. ▲37년만에 한국땅을 밟으면서 대학강단에서 가르치는 게 나의 직업이니까 머물면서 보다 많은 학생들과 만나고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이번에 들어와 앞으로 영원히 고향에 머무는 것에 대해 구상해 보려고 했지만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 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