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곡)수매는 무슨...도지(賭地.임대료) 줄 쌀이나 건질 수 있을지..." 태풍 '매미'로 남대천 물이 넘쳐 침수됐던 논에서 벼이삭을 하나씩 잘라내던 농민 박영상(50.강원도 강릉시 교동)씨는 1일부터 시작된 추곡수매 소식에 담배부터 입에 물었다. 논 주인에게 도지로 주기로 한 쌀 6가마를 줄 수 있을 지 모르겠다며 연신 한숨만 내쉬었다.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에서 남의 논 2천여평을 빌려 농사를 짓는 박씨는 아침부터 일흔이 넘은 어머니와 함께 나와 대부분이 모래에 묻힌 벼이삭을 낫으로 하나 하나 잘라냈다. 이 논은 작년 태풍 `루사'로 온통 자갈밭이 됐고 이후 둑을 다시 쌓고 논을 일궜으나 태풍 `매미'로 또다시 남대천 물이 넘쳐 자갈밭이 되면서 수확을 앞둔 벼는 모래속에 묻혔다. 박씨 모자는 이날 점심과 간식으로 먹을 빵 몇개와 먹을 물, 모래와 자갈밭으로 변해 농기계도 이용할 수 도 없어 수확한 벼를 지어 나를 지게와 낫 2자루, 낫을 가는 숫돌, 갈퀴까지 준비했다. 박씨의 노모는 "이렇게 벼이삭을 주워봐야 모두 부스러기 쌀인 싸라기 일텐데..." "맥빠져 일 못하겠다"며 벼를 말리기 위해 가져 온 비닐위에 한참을 누워 분을 삭였다. 그러나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낫을 들고 모래에 묻힌 벼 이삭을 수확하기 시작했다. 박씨도 심한 흙먼지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한 움큼씩 잘라 모아 놓은 벼 이삭을 갈퀴로 부지런히 지게에 담았다. 박씨의 유난히 시커먼 피부처럼 수확철 수해 농민들의 속도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다. (강릉=연합뉴스) 유형재 기자 yoo2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