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동기들처럼 평범하게 취업을 준비했었다면 아직도 도서관을 전전하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취직을 했더라도 제 나이 정도라면 사원급에 지나지 않겠죠." 에너지 정보기술(IT) 인력개발 등의 사업을 벌이고 있는 대양씨앤씨의 김태원 팀장(30). 김 팀장은 벤처 동아리를 기반으로 '창업전선'에 나섰던 경험 덕분에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할 정도로 어렵다는 취업에 성공했다. 온라인 사업부 '인커리어(Incareer)'를 이끌고 있는 김 팀장은 창업 경험을 높이 평가받아 지난해 1월 입사때 팀장으로 발령받는 파격적인 혜택도 누렸다. "취업이 어려워서 창업을 생각했고, 나이가 들면 하고 싶어도 못할 것이라는 조바심 때문에 벤처에 뛰어들었습니다. 사업을 한답시고 좌충우돌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는데 이게 취업에 결정적인 힘이 될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김 팀장은 여느 대학생들과 별반 다를게 없는 대학시절을 보냈다. 그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졸업(외국어대 신문방송학과)을 불과 두달여 앞둔 2000년 12월. 1999년 11월 고교 동창들과 함께 만들었던 창업 동아리를 모체로 서울 논현동에 조그만 사무실을 빌려 인터넷 회사를 설립한 것이다. 광고회사로부터 특정 회사의 광고를 수주하고 고객들이 이 광고를 본 실적에 따라 신용카드 대금을 깎아준다는게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김 팀장이 기획과 인사ㆍ총무 등 안방 살림을 맡았고 공동 창업자인 고교 동창은 자금조달과 영업 등 바깥 일을 전담했다. 하지만 출발부터 적지않은 어려움에 시달려야 했다. 시장 수요를 꼼꼼히 따져보지 않고 단순히 아이디어성 기획만으로 출발한 까닭에 시간이 흐를수록 사업은 꼬여갔다. 광고를 따내기도 쉽지 않았고 카드사들은 인터넷 광고의 효용성에 의문을 표시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인터넷 붐이 꺼지면서 운영자금 조달마저 어려워졌다. 당장 직원들의 인건비를 걱정할 처지에 놓이자 김 팀장은 창업 1년만인 2002년 12월 경영책임을 지고 창업 동료들에게 자신의 지분을 모두 넘겼다. 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요량으로 김 팀장은 2002년 1월 인터넷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던 대양씨앤씨에 입사원서를 냈다. 미국 유명대학 MBA(경영학석사) 출신 등 쟁쟁한 경력자들이 줄줄이 원서를 냈지만 최후의 승리는 그에게로 돌아갔다. 인터넷 사업부를 맡은 그는 2003년 7월 국내 최초의 헤드헌팅 포털사이트인 커리어센터(www.careercenter.co.kr)를 탄생시키는 산파역을 톡톡히 해냈다. 대양씨앤씨 최고재무책임자(CFO)인 박정배 부사장은 김 팀장 채용 이유로 "중견기업 입장에선 공부를 많이 해 이론에 박식한 사람보다는 다양한 실전경험을 가진 패기있는 인재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남들처럼 대학 졸업후 취업하려고 했다면 지금의 그는 아마도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벤처 창업은 그에게 사업 실패라는 비싼 수업료를 물렸지만 또한 기업 경영이라는 값진 경험과 취업으로 가는 지름길을 제공한 셈이다. 김태철 기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