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성사 직전 이뤄진 대북 비밀송금 의혹사건 관련자 6명 모두에 대해 1심 재판부가 집행유예와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대북송금을 통치행위 자체가 아닌 '관련행위'로 봐야 하며 따라서 실정법 위반사안은 처벌이 불가피한 유죄라고 규정하면서도 남북관계의 특수성 등을 감안해 실형을 선고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그러나 대북송금 대가성 여부에 대해 '사법적 판단 대상이 아니다'는 이유로 유죄 여부를 가리지 않았다. 서울지법 형사합의22부(재판장 김상균 부장판사)는 26일 대북송금 의혹사건으로 구속기소된 이기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특경가법상 배임 및 직권남용)에 대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옛 외국환거래법 및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임동원 전 국정원장에 대해서는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이와 함께 현대그룹에 대한 불법대출을 주도한 혐의(특경가법상 배임)로 기소된 이근영 전 산업은행 총재에 대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박상배 전 산업은행 부총재에 대해서는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각각 선고했다.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그러나 최규백 전 국정원 기조실장에 대해서는 "정보업무의 특성상 상관의 지시를 거절하기 힘든 점이 인정된다"며 벌금 1천만원에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통치행위는 국가나 민족 전체의 운명 등과 관련된 중요사항으로 위법성을 따지는 것은 부적절하고 법원도 판단을 자제해왔다"며 "남북정상회담이 그 경우이지만 이와 관련된 사실적 행위(대북송금)의 형사법 위반 여부까지도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만 남북정상회담은 민족화해,군사적 긴장완화,이산가족 만남 등 측량하기 어려운 긍정적 변화를 가져왔다는 평가도 있고 피고인들 역시 민족적 소명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점 등을 감안해 집행유예를 선고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오후 별도로 열린 재판에서 현대 비자금 1백50억원 수수혐의로 추가 기소된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은 "P호텔 토파즈룸에서 이익치씨를 만나 CD(양도성예금증서)를 건네받았다는 검찰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당시 언론사 간부 등을 만나면서 지출했던 비용은 판공비와 윗분들이 준 돈"이라고 주장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