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표된 2003년 추계검도정기중앙심사 합격자 명단에서 낯선 이방인 이름이 검도인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탈리아인으로 승단 심사를 받기 위해 여름휴가마저 반납하고 한국을 찾아 결국 6단 합격의 기쁨을 누린 발렌티 피에트로씨(50·왼쪽)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현재 이탈리아 재무부에서 보안경호 총책임자로 있는 피에트로씨는 현지에서 심사를 볼 수 있는 데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처음 검도를 가르친 사범의 나라에서 단증을 따겠다며 지난주 먼 길을 나섰다. 피에트로씨는 수원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이종원씨(54·8단·오른쪽)가 지난 80년 봄 로마대학교 경제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을 무렵 현지인 20여명에게 검도를 가르치기 시작할 때 처음 인연을 맺었다. 순발력이 뛰어난 피에트로씨는 검도의 매력에 금세 푹 빠졌다. 이후 2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탈리아선수권 개인전에서 10회나 우승할 만큼 실력이 급성장했다. 퇴근 후에는 현지 스포츠센터에서 사범으로 활동하며 한국 검도 전파에 나서던 피에트로씨는 이탈리아 최고단인 6단을 딸 수 있는 실력에 이르자 주저없이 휴가를 내고 21일 치러질 시험을 보기 위해 한국으로 달려왔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는 최고로 통하는 그가 6단이 되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국내에 30여명밖에 없는 8단의 고수(高手) 심사위원 7명의 까다로운 안목을 만족시켜야 하는 데다 기본동작,연습시합,본국검법 등 각 과목에서 모두 60점을 넘겨야 했던 것.또 보통 외국인에게는 필기시헙이 면제되는 것이 관례인데 스승인 이 교수가 직접 '유효타격'을 주제로 하는 논술문제를 이탈리아어로 번역해 출제하고 채점까지 맡았다. 23일 출국한 제자의 합격 소식을 전해듣고 자신의 일처럼 기뻐한 이 교수는 "피에트로는 동양의 무도 정신은 물론 한국의 문화를 무척 좋아한다"며 벽안의 제자를 칭찬했다. 장욱진 기자 sorinag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