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멕시코 칸쿤에서 일어난 이경해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 회장의 자살사건이 지난 6월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반대시위 이후 잠잠해졌던 농민운동의 강력한 기폭제로 작용할 전망이다. 6월 고속도로 점거 등 강도높은 운동을 전개했던 농민단체들은 이후 화물연대파업과 농번기로 집단행동을 잠시 미뤘지만, 이씨의 죽음으로 농심(農心)이 심상치않은 조짐을 보이고 있다. ◆ 농심은 `폭풍전야' = 최종 각료선언문 도출에는 실패했지만 목숨을 담보한이씨의 '작은 항거'에도 불구하고 세계무역기구(WTO) 제5차 각료회의의 초안이 발표되자 농민단체들은 정부의 협상력 부재를 비난하고 생존권 투쟁을 위해 바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각료회의 초안은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 지위를 인정받더라도 농산물 관세인하를 대폭 감축하고, 농업 보조금을 줄이는 내용을 담고 있어 농업시장을 사실상 전면개방해야 하는 위기에 놓이게 된다. 이번 회의에서 각료선언문 도출에 실패, 잠시 한숨을 놓을 수 있게 됐지만 미국과 EU측의 거센 압력에 언제라도 국내 농업시장은 개방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농민들 사이에 팽배해 있다. 한농연 측은 15일 "정부가 이번 각료회의에서 국내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노력을 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며 "정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겠다"고 대정부 투쟁을 강하게 시사했다. 특히 올 정기국회에서 FTA 비준안이 통과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데다 올해 유례없는 흉작 등 `뇌관'이 산재해 있다. 또 지난 2000년 발효된 농가부채탕감 특별법에 의해 유예된 상환기간이 올해 말로 끝이 나는 것도 숨어있는 불씨이다. 농민단체들은 상환기간을 유예했지만 농산물 개방 등 부채를 탕감할 수 있는 외부적인 환경이 받쳐주지 않아 농가부채 상황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고 입을 모으고있다. 당장 내년부터 부채 상환이라는 현실적인 압박을 받게 될 경우 농민들은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이들 단체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 내주부터 집단행동 본격화 = 농민단체들의 움직임은 이경해씨의 시신이 국내로 운구되는 오는 18일부터 본격적으로 달궈질 것으로 보인다. 이씨의 시신이 예정대로 운구될 경우 국내 추모행사를 주관하게 될 한농연은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서 가족들과 합의를 해야 한다"며 "추모행사의 규모와 방법 등구체적인 것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농연은 이씨의 죽음으로 쏠린 농산물 개방에 대한 국민적인 높은 관심을 살려 자신들의 목소리에 싣는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한농연은 이번 추모행사를 계기로 여론을 모아 FTA 비준 반대와 농산물 개방 저지 등 자신들의 뜻을 강력히 밀어부치기로 했다. 지난 4월 9개 농민단체가 모여 결성했지만 아직 조직력이 충분하지 않은 전국농민연대의 결속력을 다질 수 있는 계기로 삼겠다는 것. 한농연은 전국적인 대규모 추모행사 개최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지만, 이번 주중 `대국민 선전용' 집회 등 상당한 규모의 추모행사를 열 예정이다. 일단 농민단체들은 오는 22일 시작되는 국정감사를 감시하면서 예산안 심의와추곡수매 과정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고, 오는 11월19일 여의도와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농민 10만명이 참가하는 농민생존권수호 범국민대회를 열 계획이다. 전농 또한 11월13일 `WTO 반대 농민대회'를 열 예정이며 전국민중연대도 11월28일 대규모 농민대회를 개최할 방침이다. 이에 앞서 한농연은 내달 20일께 중앙회 임원과 각 지부회 회장들로 구성된 `국토 도보행진단'을 구성, 농산물 개방 반대여론 조성에 나서기로 했다. (서울=연합뉴스) 강훈상기자 hskang@yonha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