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항 1. 가상적으로 만든 두 인물의 대화를 읽고 다음 물음에 답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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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 그대가 담헌이나 연암과 함께 북학을 주장한다고 들었다. 북학이 도대체 무
엇이냐?

乙: 일찍이 맹자는, '나는 중화(中華)의 문화 덕에 오랑캐가 변화했다는 말은 들
었지만 중화가 오랑캐 덕에 변화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하였다.'고 하였사옵
니다. 초나라 출신인 진량은 주공과 공자가 가르친 도를 좋아하여 북쪽으로 가
서 공부를 하였사옵니다. 그 결과 북방 학자 중에 진량만한 이가 없사옵니다.

甲: 조선도 압록강을 넘어 북쪽으로 가서 공부를 해야 한다 이 말이렷다. 중화와
오랑캐 이야기는 받아들이기 힘들구나. 조선에 작은 중화[小中華]를 자처하는
이들이 많음을 알렷다? 오랑캐에게 멸망한 명나라를 대신하여 오직 조선만이
중화의 도를 실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니라. 혹자는 작은 중화가 명나라를 무
조건 따르는 눈먼 충심이라고 하지만, 과인 생각은 다르니라. '소중화'란 세
글자 안에는 조선 문화가 세상 제일이라는 무한한 자긍심이 있도다. 그 자긍
심을 바탕으로 더 뛰어난 시문(詩文)을 만들고 생활 규범들을 가다듬을 수 있
느니라. 이런 주장에 반대하는가? 그 이유가 무엇인가?


乙: 그러하옵니다. 조선 문화는 세상 제일이 아니옵니다. 명나라가 멸망하였으니
중원에는 더 이상 제대로 된 문화가 없다는 주장은 눈먼 장님이 내뱉는 농담과
같사옵니다. 신은 작년 여름 연경(燕京)에 가서 똑똑히 보았나이다. 그곳에는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지식과 물품들이 산처럼 쌓였나이다. 피부색
과 머리 모양, 얼굴 모양이 제각각인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자유롭게 거리
를 활보했사옵니다. 조선은 그 높은 문화를 진량처럼 배워야 하옵니다. 소중화
란 우물 안 개구리들이 내는 자화자찬에 지나지 않사옵니다.


甲: 근래의 사대부들은 습성이 괴이하여 반드시 우리나라 규모를 벗어나고자 하
며, 멀리 중국인들이 하는 것을 배우고자 하고 있어. 서책은 물론이고 평소에
쓰는 그릇과 물건 역시 모두 중국산을 사용하여 이로써 높이 올라간 것처럼 자
랑스러워하지. 묵.병풍.의자.탁자.솔.술통 등 기교(奇巧)한 물건을 좌우에 늘
어놓고 차를 맛보고 향을 피우며 억지로 고아한 척하는 토양을 이루 다 기록
할 수없어. 내가 깊은 궁궐에 앉아서도 오히려 들은 풍문이 낭자(狼藉)하여
폐됨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게지. 옛사람이 말하기를, "지금 사람은
지금 옷을 입어야 한다."라고 하였으니, 이 말은 절실하여 공경할 만하니라.
이들이 우리 동방에서 태어났으면 마땅히 우리 동방의 본색을 지켜야 할 것인
데, 어찌 힘을 다해 중국 사람을 모방하려 하는가? 이 역시 사치 풍조의 일단
이며 말류의 폐단으로 장차 말할 수도 없고 고칠 수도 없게 될 것이니 실로 보
통 근심이 아니라고 할 것이야.


乙: 옛날 영웅은 반드시 원수를 갚을 뜻이 있으면 호복 입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중국 법을 "배울 만하다."라고 말하면 떼를 지어 일어나서
비웃나이다. 필부가 원수를 갚고자 할 때 원수가 날카로운 칼을 찬 것을 보면
그 칼을 빼앗을 방법을 고민하는 법이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당당한 천승(千
乘)의 나라로서 천하에 대의를 펼치려고 하는데도 중국의 법 하나를 배우려고
하지 않사옵니다. 그럼으로써 우리 백성들이 고생만 숱하게 할 뿐 아무 효과
도 보지 못하고, 궁핍에 찌들어 굶어 죽고 스스로 쓰러지게 했사옵니다. 그리
고 백배나 이익이 될 것을 버리고 결코 행하지를 않았사옵니다. 신은 중국을
차지한 오랑캐를 물리치기는커녕 우리나라 안에 있는 오랑캐의 풍속도 다 변
화시키지 못할 것이 염려되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사람들이 오랑캐를 물리치
고자 한다면 차라리 누가 오랑캐인지를 분간해야 하옵니다. 그리고 중국을 높
이고자 하면 차라리 저들의 법을 완전히 시행함으로써 더욱 중국을 높일 수가
있을 것이옵니다. 만약 다시 명나라를 위하여 원수를 갚고 우리가 당한 치욕
을 씻고자 한다면 이십 년 동안 힘써 중국을 배운 다음에 함께 논의해도 늦
지 않을 것이옵니다.


甲: 과인은 어려서부터 효종 할아버지와 임경업 장군, 그리고 이완 대장을 존경

며 흠모해 왔느니라. 그분들이 염원한 북벌을 완성한 후 개가를 부르고 싶었지.
과인이 임금이 되면 그분들이 못다 이룬 꿈을 실현하리라 결심했어. 동쪽 바다
의 큰 고래와 서쪽 변방의 흉악한 멧돼지를 몰아내는 꿈! 군대는 흉기이고 전
쟁은 불행이라지만, 제갈공명이 연거푸 출사표를 짓고 원정을 떠났듯이, 올바
름을 위해 반드시 싸워야 하는 일도 있는 법이야. 후대인들이 제갈공명을 떠
받드는 것은 탁월한 지혜와 신묘한 병법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의리
와 명분을 중히 여기며 끝까지 올바름을 추구했기 때문이니라. 그 결과가 고작
오장원의 때 이른 죽음이냐고 힐난하는 이도 있지만, 과인은 그 죽음이 곧 패
배를 뜻한다고 보지 않아. 출사표를 올리지 않고 좁은 촉나라에서 호의호식하
는 것이 도리어 패배라면 패배이니라. 오늘 여러 선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
니 북벌은 개 짖는 소리로 취급받고 오직 압록강 북쪽 학문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목소리만 높았어, 그럴 바에야 차라리 조선을 떠나 그곳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乙: 효종 임금이나 임 장군, 이 대장은 누구나 다 존경하옵니다. 병자년에 당한
치욕을 씻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세 분의 바람은 맑고 숭고한 것이었
나이다. 선비들 대부분이 북벌과 북학 중에서 어느 하나는 옳고 어느 하나는
그르다고 하옵니다. 그러나 북벌과 북학은 만날 수 있사옵니다. 조선이 대군
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는 것은 곧 청나라와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옵니다.
과연 지금 조선이 청나라를 망하게 할 만큼 힘을 키웠사옵니까? 일부 사대부들
이 중국 물품을 대국에서 몰래 들여와 방 하나를 가득 메우고 자랑하는 이들이
도성에도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백성들 고통을 덜어 줄 새로운 학문을 익히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아니
될 것이옵니다. 배우되 무조건 옳다고 믿지 않고 가려서 살핀다면 많은 이로
움이 있을 것이옵니다. 청나라는 땅이 넓고 오가는 사람들이 많은 탓에 나고
드는 지식과 힘을 일일이 챙길 수 없사옵니다. 우리로서는 좋은 기회이옵니
다. 북학을 주창하시는 연암 선생이 젊은 시절 북벌의 뜻을 폈고 지금도 그
둘을 함께 가져가는 까닭이 여기에 있나이다. 조선을 부강하게 하는 길이라면,
우리말을 버리고 중국어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옵니다.


甲: [ ① ]


乙: 중국어는 문자의 근본이옵니다. '하늘' 같은 것은 바로 '텐[天]'이라 부르고,
다시 겹쳐서 풀이하는 간격이 없으므로 물품 명칭은 더욱 분별하기 쉽사옵니다.
비록 글을 모르는 부녀자나 어린아이라도 보통 쓰는 말이 모두 문구(文句)로
되며, 경(經). 사(史). 자(子). 집(集)의 여러 종류도 입에 말하는 대로 나
오나이다. 중국은 말로 인해서 글자가 나왔고 글자를 찾아서 말을 풀이하지
않사옵니다. 그러므로 외국에서 비록 문학을 숭상하고 글 읽기를 좋아하는 것
이 중국과 비슷하다 할지라도 마침내 간격이 없지 않음은, 이 언어라는 커다
란 꺼풀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옵니다. 우리나라는 지역적으로 중국과 가깝
고 성음(聲音)이 대략 같으니, 온 나라 사람이 우리말을 버린다 해도 불가할
것이 없사옵니다. 그러한 뒤에라야 오랑캐라는 말을 면할 것이며, 동쪽 수천
리 땅이 스스로 하나의 주(周). 한(漢). 당(唐). 송(宋)의 풍속으로 될 것이
오니 어찌 크게 통쾌한 일이 아니겠사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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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甲의 대화문 [ ① ] 부분에 '중국어의 공용어화'에 대한 적합한 내용으로
200자 원고지 400자 정도의 문장들을 작성하되, 자신이 甲이 되었다고 가정하
고서 자연스러운 대화문이 될 수 있도록 하시오.


(2) 甲이나 乙 가운데 한 인물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현대에서 외래문물을 수용하는
일에 대하여 논술하는 글을 작성하되, 적절한 제목을 달고 2,000자 내외로 완
성된 한 편의 글이 되도록 하시오.


문항 2. 다음 글들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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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과학적 지식은 완전히 검증된 진리라고 생각하며, 어떤
과학 현상에 대하여 자신들의 견해가 서로 일치하지 않을 때 과학자의 말에 귀
를 기울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즉, 사람들은, 서로의 법적 이해관계가
얽히면 그 옳고 그름을 법관이 심판해 주는 것보다 더 엄밀하게, 자신들의 과
학 지식의 논쟁에 대하여 과학자가 판단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데 어떤
예측이 과학적으로 검증되었다고 해서 모두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종종 이야기된다. 즉, 어떤 과학자는 이것이 맞다고 하고 다
른 과학자는 그것이 틀렸다고 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는 것
이다.
근년 논란거리가 되었던 환경문제에 관한 예를 들어 보자. 많은 과학자들이
이산화탄소의 방출로 지구의 기온이 올라가 이로 인해 커다란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그 예측의 구체적 실상이 서로 다르다. 어떤 과학자는
기후 모델을 수퍼컴퓨터로 계산하여 다음 세기 중 기온이 섭씨 5.5도 상승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이에 대해 영국의 한 과학자는 기존 모델에서는 얼음의
냉각 효과를 고려에 넣지 않은 점을 지적하고, 이산화탄소가 다음 세기에 두
배로 증가되어도 온도는 섭씨 1.9도밖에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하였다.
또한 미국 국립대기연구센터의 한 연구자는 바닷물의 순환과 열흡수 기능을 고
려한 결과, 온도 상승은 섭씨 1.6도에 그칠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한편, 지구의 기온이 올라가도 심각한 재앙을 일으킬 만큼의 해수면 상승이
야기되지 않을 것이라는 발표도 있었다. 미국 지구물리학협회의 과학자들은
온실효과로 인한 21세기 중반의 해수면 상승이 현재 예측치의 3분의 1정도인
0.3 미터에 불과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하였다. 이들은 그린랜드의 빙원과 남극
빙산에 대한 새로운 자료를 바탕으로 이 같은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과학자들은 대기와 해류 순환 사이의 상관관계를 감안하여 새
로운 컴퓨터 모델을 개발하고, 이를 활용하여 남극의 온도 상승은 북극의 온도
상승에 비하여 반세기 정도 뒤에 나타난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들에 따르면
지금부터 35년 뒤에는 북극의 온도가 섭씨 2도 올라가겠지만, 남극에서 그렇게
되려면 다시 65년을 더 지나야 한다는 것이다.


(나) 우리의 상식적인 생각으로는 미(美)와 추(醜), 현(賢)과 우(愚), 선(善)과 악
(
惡)은 엄밀하게 구별된다. 아름다운 것은 도저히 추할 수 없고, 어진 것은 어
리석은 것과 서로 조화롭지 않으며, 선과 악은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런데 노자에 따르면, 어리석어 보이는 것을 진정으로 어리석다고만은 할 수
없고, 진정한 현자(賢者)일수록 오히려 어리석은 자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인식이나 판단은 사상(思想)의 실체보다는 외형에 영향을 받기 쉽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흔히 어리석어 보이는 것을 아주 어리석다고 보고 미
워 보이는 것을 아주 밉다고 단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라. 이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다."라고 가르쳤는데, 공자에게 있어서 참으로 안다는 것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을 분명하게 구별하여 양자를 혼동하지 않는 것
이다. 그런데 노자는 자기가 알고 있다고 할 때의 그 안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
이며 또 참으로 알고 있다고 할 때의 그 '참으로'란 것이 어떤 것이냐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공자가 아는 것은 안다고 하라고 가르치는 반면, 노자는 안다
고 하는 것까지를 오히려 알지 못하는 것으로 부정하는 것을 가르친다. 이와
같이 노자는 근원적인 진리가 인간의 인식을 초월하는 것이라는 것, 그 진리
앞에서는 알고 있다고 하는 것이 동시에 알지 못하는 것이 되고, 알지 못한다
는 것이 동시에 알고 있는 것이라고 하는, 고차원적인 지(知), 이른바 부지지
지(不知之知)를 체관(諦觀)하고 있다.
공자의 지(知)는 박학을 전제로 하는 지이다. 그러나 노자는 그 박학의 지를
부정한다. 노자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자기의 무지를 자각하는 것이다. "너
자신을 알라."라고 설파한 소크라테스와 같이, 노자도 또한 참으로 아는 것이
아는 데 있지 않고 알지 못한다고 하는 데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다) 질문은 호기심에서 나온다. 호기심이 없으면 질문도 없다. 호기심은 새로운 것
에 대한 열망이며, 새로운 것에 대한 애정의 표현이다. 관심은 인식의 원동력
과 같다. 질문은 인식에 대한 욕구를 나타낸다. 만일 모든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그저 확인하는 정도에서 지적인 활동을 멈춘다면, 어떠한 지식 체계
의 발전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자기의 무지를 인식한다는 것은 앎을 향한
첫 발을 내딛는 것이다. 미지의 것, 새로운 것에 대한 물음만이 우리의 앎의
세계를 밝힌다.
모든 과학적인 연구에서는 답이 주어지기 전에 먼저 질문이 제기되는데, 이
때 질문은 연구자의 세상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다. 학문은 관심에서 출발한다.
관심을 가짐에 따라 질문이 생기게 되는데 학문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결안
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다. 학문은 남이 만들어 준 답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을 제기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과정이다. 학
문은 결과물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활동이 아니라 자기 관심에서 비롯
된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마련해 나가는 적극적인 활동이다. 학문은 질문의
제기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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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라)는 글 (가)에 제기된 문제에 대한 현대 과학 철학의 어떤 견해를 제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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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현대의 과학 철학에서는 서로 다른 과학 이론이 대립할 때 어느 것이 맞고
어느 것이 틀렸는지, 또는 어느 것이 낫고 어느 것이 그렇지 못한지를 판단
할 수 없다는 견해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과학 이론도 하나의 신념 체계
로 이해될 수 있다. 즉, 과학적인 지식이 시간이나 공간을 초월하여 적용될
수 있는 불변의 진리가 아니고, 믿음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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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라)의 이러한 견해가 글 (나)에 소개된 '앎'에 대한 이해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해 제목을 달고 2,000자 내외의 논술문을 작성하되, 다음 사항에 유
의하시오.


(i) 글 (나)에 제시된 '무지(無知)'와 글 (다)에 언급된 '무지(無知)'가 어떻게
같고 다른지에 대한 논의가 논술문의 본론에 포함되도록 하시오.
(ii) 글 (가)의 서론 다음에 제시된 사례 또는 이와 유사한 사례를 논지 전개
를 위한 근거 또는 예증을 위한 실례로 활용하시오.


문항 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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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천재적 재능의 성숙이 그 개인의 인간적 운명과는 별개로 완성되는 자동
적이고 내면적인 과정이라는 생각과 드물지 않게 마주치게 된다. 이런 생각은 위대
한 예술작품의 창조가 그 창조자의 사회적 실존, 즉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 온 한 사람으로서 그의 성장과정이나 그의 체험과는 무관하다는 관념과 결합되
어 있다. 따라서 모차르트 전기들은 종종 예술가 모차르트와 그의 예술을 이해하는
일을 인간 모차르트에 대한 이해와 분리할 수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이러한분리는 인위적일 뿐만 아니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까닭에 불필요하다. 우리가 가진현 수준의 지식으로는 한 예술가의 사회적 실존과 작품들 간의 상호연관성을 칼로 해부하듯 펼쳐 놓을 수는 없다. 그러나 탐침으로 내장을 진찰하듯이 탐사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천재의 비밀을 미화하는 것은 현재의 문명수준에 광범위하게 확산된 깊은 욕구를 충족시켜 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미화는 위대한 인물들을 신격화하는 형태들 중의 하나로서 그 이면에는 평범한 사람들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한 쪽을 인간 수준 이상으로 높임으로써 다른 쪽을 낮추는 것이다. 한 예술가의 업적에 대한 이해와 그의 작품에서 느끼는 즐거움은 그 작품과 인간 사회 속에서의 그의 운명과의 연관성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통해 약화되기보다는 오히려 깊어지고 강화될 수 있다. 특출한 재능, 또는 모차르트 시대의 용어로 말한다면 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특성을 뜻하는 '천재'는 그의 사회적 운명을 결정하는 요소들 중에 하나이며 이런 점에서 천재가 아닌 범인들의 범상한 재능과 꼭 마찬가지로 하나의 사회적 사실이다.

베토벤과 달리 모차르트의 경우에는 '예술가'와 '인간'의 관계가 많은 연구자들
에게 특별히 혼란스럽게 보이는데, 그 까닭은 서신이나 보고서 또는 다른 증거자료
들에서 나타나는 그의 이미지가 천재에 대한 선입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
다. 만약 길거리에서 모차르트를 마주친다면 그는 특별한 인상을 주지 못할 평범한
한 인간이었다. 그는 때때로 유치한 행동을 했고 사적인 자리에서는 똥과 관련된
비유들을 거침없이 사용하기도 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애정에 대한 강한 욕구를 가
지고 있었는데, 이는 짧은 성년기에 왕성했던 성욕이나 아내와 청중의 사랑에 대한
끝없었던 갈구에서 잘 드러난다. 문제는 평범한 범인의 모든 동물적 욕망을 두루
갖춘 사람이 어떻게 해서 듣는 이들의 모든 동물성을 씻어 주는 듯한 순수한 음악을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음악의 특징을 '심오한', '다정다감한', '고상한'이나 '비밀스러운' 등의 개념들로 나타낸다. 이런 음악은 범상한 인간 세계와는 다른 세계에 속하는 듯하며 그 세계에서는 인간의 승화되지 못한 측면들을 기억하는 일조차 거슬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낭만주의적 이원론이 오늘날까지 줄기차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에는 명
백한 까닭이 있다. 이 이원론은 현재의 발전 수준에서는 자신의 동물성을 제대로 극
복하지 못했다는 문명인의 거듭된 확인과 성찰에 다름 아니다. 천재의 이상적 이미
지는 각자가 자신의 정신성을 지키기 위해 육체성에 대항하여 전투를 벌이는 군대
의 동맹자가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싸움터를 이동시켰다. 이런 식으로 천재의 특
성으로 여겨지는 비밀과 그의 비천재적 인간성을 각각 다른 서랍 속에 넣어 두는 이
분법은 바로 유럽 사상계에 깊이 자리한 비인간적 측면을 표현한다. 이는 극복되지
못한 문명적 문제인 것이다.
─────┸─────────────────────────────────
(1) 윗 글의 필자가 비판하는 '천재'의 개념은 어떠한 것인지 요약하여 200자 원고
지 400자 내외로 서술하시오.


(2) 윗 글에서 말하고 있는 '천재'의 개념을 유추(類推)하여 모차르트가 가진 천재
의 성격이 어떠한 것인지 200자 원고지 2,000자 내외로 서술하되, 윗 글에서 언
급된 '천재'의 개념에 본인이 동의하는지, 동의하지 않는지를 밝히고 자기 입장
을 보강하는 다른 사례를 더 들면서 제목을 달아 한 편의 완성된 글로 작성하시
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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