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이르면 10월께 조기 도입을 적극 검토중인 공개적 `변론재판' 개최는 단순히 그간의 `서류재판' 관행에서 탈피하는 수준을 넘는 재판기술 및 체계상 대변신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변론재판의 활성화 방침에 수반될 `상고허가제' 부활 검토 작업은 헌법이보장한 3심제를 근간으로 하는 우리나라 사법 체계에 중대한 변화를 예고, 사회적논란과 반발이 가열될 것으로 보여 시행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 `정책법원' 시도 배경 = 대법원은 사회적 정책판단이 요구되는 주요 사건의경우 변론재판을 열어 소송당사자나 관계자가 아닌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을 법정으로 `초빙', 의견을 청취하고 그 결과를 판결에 반영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이는 소송의 이해당사자가 서로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하급심의 재판과 뚜렷이구별되는 것으로, 사회적 가치판단이 필요한 사건에 대해서는 적극적 사실심 재판을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때문에 대법원의 변론재판 개최는 실무법원이라는 지금까지의 위상에서 정책법원으로의 전환을 이루기 위한 첫 포석으로 해석될 수 있다. 대법원이 이처럼 변론재판을 상설화시키고자 하는 것은 최근의 `대법관 제청파문'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대법원은 이번 파문을 통해 국민이 대법원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확인했으며, 그것은 미국 연방대법원 등 외국의 최고 사법기관처럼 정책적 판단을 내려주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하고 있다. 변론재판과 상고허가제 도입 문제는 대법원이 적극 추진키로 약속한 이른바 사법개혁 프로그램중 가장 중요한 중심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대법원이 외국의 사법기관처럼 당장 정책법원으로의 역할 변신을 이뤄내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대법원은 외국의 경우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사건을 처리하고 있어 현사법시스템을 유지한 상태에서는 정책법원으로의 전환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진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연방대법원이나 일본의 최고재판소가 연간 처리하고 있는 사건 수는 수백건에 불과한 반면 우리 대법원은 2만5천건 이상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대법관 12명이 1인당 각각 2천건 이상의 사건을 심리하는 현 실정에서는 정책법원 전환은 엄두도 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 `상고허가제' 논란 가열 = 대법원 내에서는 지난 90년 폐지됐던 상고허가제가 보다 엄격한 형태로 정착돼야 할 것으로 보고 조기 부활을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1년 1월 제정됐다가 90년 1월 폐지된 상고허가제는 대법원에 상고할 수있는 사건에 대한 제한 규정을 두어 상고허가율을 15∼25% 수준으로 유지, 상고사건10건 중 2건 정도만 대법원에서 다룰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상고허가제는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제한한다는 이유로 폐지됐고, 대신지난 94년부터는 상고제한을 다소 완화한 심리 불속행제를 운영, 상고사건 2건 중 1건꼴로 상고가 이뤄지고 있다. 대법원은 일단 상고허가제를 부활시키기 위해서는 1,2심 재판부의 강화가 수반되어야 한다고 진단하고 있다. 국민이 상고에 대한 제한을 받는 것을 수긍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1, 2심 재판에 대한 승복이 필수적으로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법대 조 국 교수도 "변론재판과 상고허가제가 모두 도입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상고허가제 도입은 반드시 하급심 강화와 동시에 이뤄져야 상고제한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변협측은 `변론재판'을 여는 데에는 환영하는 분위기이나 상고허가제부활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급심 판결에 대해 국민이 승복못해 대법원까지 사건을 가져가는 사법부의 현실을 감안할때 상고허가제 도입은 업무경감을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변협측 주장이다. 이와관련, 대한변협 공보이사 도두형 변호사는 "하급심 기능을 강화하지도 않고상고허가제를 재도입하게 되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연세대 백태승 교수(법학)도 "1, 2심 재판부를 분야별로 전문화하고, 능력있는판사들을 대거 배치하는 방법으로 하급심을 강화하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이 상고허가제만을 도입한다면 국민의 더 큰 저항을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대법원은 이와 관련, 일단 법조계 내부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한뒤 상고허가제도입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입장이다. 학계나 변호사업계 지적을 겸허히 수렴, 하급심 강화를 위한 프로그램과 정책법원으로서의 위상 전환을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국회나 사회단체 등을 통한 사회적 논의과정을 충분히 거쳐 국민적 합의가 도출될 경우 상고허가제를 도입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대법원이 정책법원으로의 전환을 이뤄가면서 대법관 구성과 하급심 강화, 상고허가제 도입여부 등 산적한 과제를 어떻게 풀어갈 지 관심이 모아진다. (서울=연합뉴스) 고웅석 기자 freem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