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이 그 정도 선에서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것은 허용하겠습니다. 재판장도 충분히 피고인의 주장을 이해하고 있으니 재판부에 판단을 맡기세요" 채권투자 등 명목으로 모두 42억원을 편취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로 기소된 `큰손' 장영자.이철희씨에 대한 공판이 11일 오후 서울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이현승 부장판사) 심리로 열렸다. 피해자 한모씨의 부인에 대한 증인 신문이 진행된 이날 공판에서 장씨는 신문이진행되는 중간중간 증언에 이의를 제기하며 재판부에 항변을 쏟아냈고 재판부는 법정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장씨를 다독이는데 열중하는 모습이었다. 장씨가 이나마 재판부의 `배려'속에 재판을 받는 것도 그나마 다행이라는 것이관계자들의 전언. 지난 2000년 5월 기소된 이 사건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린 것은 기소이후 2년 반가량 지난 작년 10월의 일이다. 재판부 변경, 송달 문제 등 이유로 재판이 지연됐던 이 사건은 첫 공판 이후 장씨가 `재판부가 예단을 갖고 있다'며 재판부 기피신청을 내는 등 재판 초기부터 순탄치 못한 행보를 예고했다. 하지만 이 재판이 늦어진 더 큰 이유는 이씨가 서울지법 서부지원에서 구권화폐와 관련한 사기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었기 때문. 서울지법에 기소되기 한달여 전인 2000년 4월 서울지검 서부지청이 장씨에 대해`거액의 구권화폐를 싼 값에 구입해 주겠다'고 속여 은행 관계자와 사채업자 등을상대로 225억원의 사기행각을 벌인 혐의로 구속기소했던 것. 장씨는 그러나 이 사건의 재판에서도 재작년 3월까지 열린 10여차례 공판에서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 증인들을 향해 욕설을 퍼붓거나 자신의 변호인과도 언쟁을 벌이는 등 `막무가내'식 행동을 보였다. 결국 재판부는 장씨의 이런 행동 때문에 공범 윤모씨가 징역 5년을 받는 등 장씨와 함께 구속기소된 다른 공범들이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는 동안 장씨에 대한 재판을 중단시켜 버렸다. 이 재판은 중단 10개월 여만인 작년 1월 재개돼 증인들의 출석 기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심리를 완료하고 2-3번 정도의 추가 심리를 거쳐 결심까지 가능할 전망이다. 구속 상태에서 1심 재판에만 3년 반 가량 걸린 셈이다. 하지만 구속 수감자가 6개월 안에 1심 선고를 받지 못할 경우 석방해야 함에도장씨가 기소이후 3년 넘게 수감생활을 계속하는 이유는 가석방 상태에서 장씨가 사기극의 주범으로 지목돼 과거 확정된 형의 잔여기간을 마쳐야 하기 때문. 장씨는 지난 83년 희대의 어음사기 사건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뒤 형기를못채운 92년 3월 가석방됐지만 출소 1년10개월 만인 94년 1월 140억원의 차용사기사건으로 또다시 구속, 4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장씨는 이어 지난 98년 8.15특사로 다시 풀려났으나 2000년 구권화폐 사기사건으로 구속기소되면서 92년 단행된 가석방이 취소돼 현재 잔형을 살면서 두 법원에서1심 재판을 각각 받고 있는 신세다. (서울=연합뉴스) 류지복 기자 jbry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