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은 자살 직전 자신의 답답한 속내를 누군가에게 모두 털어놓았을까? 현재로서는 고교 동창이자 자살 직전 만나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던 친구 박기수(53)씨가 핵심인물로 떠오르고 있다. 박씨의 국내 체류 기간은 정 회장이 3차(7월26일.31일,8월2일)에 걸친 검찰 소환조사로 심리적 압박이 최고조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와 묘하게도 겹친다. 이 때문에 검찰 소환조사와 관련해 정 회장이 박씨에게 입국을 요청했고, 박씨와 두차례 이상 만나 무언가를 주문하거나 협조를 구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정 회장이 '인간적 냄새'가 나는 자신의 속내까지 모두 다 숨김없이 털어놓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관측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6일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정 회장의 자살 소식을 알고 '정회장이 힘들어 했던 이유에 대해 이제야 이유를 알겠다'라는 요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는 경찰에서 "(정회장이) 나와 얘기하면서도 생각은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이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대북송금 및 비자금 사건과 관련된) `그런 부분'이겠지. 만날 당시에는 몰랐지만 이제야 그런 이유인지를 알겠다"고 말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정 회장이 개인적 아픔과 속살까지는 내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박씨는 정 회장과 40년지기 친구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사석에서라도 항상 '회장님'이라며 존대를 하고 정 회장은 하대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자살 전날인 3일 오후 2시40분께 박씨와 약속을 잡았을 때도 '만나지, (미국으로) 언제 들어가나, 2시쯤 나갈테니 보자구'라고 말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박씨가 정 회장과 직접 통화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박씨는 한국에 입국할 때마다 항상 정 회장의 운전기사 및 비서를 통해 자신의 입국사실을 알렸고, 정 회장이 이후 약속을 잡았던 형식이 통상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대기업 총수나 재벌 등과 접촉할 때 계통을 밟아 이뤄지는 형식이 적용됐던 것. 현대 관계자들은 정 회장이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후계자로 경영수업을 받으면서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왔고, 친하다고 하는 주변 지인들과도 일정한 '위계질서'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따라서 박씨와 정 회장도 고교동창이라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대북송금 및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특별한 얘기'를 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정 회장이 자신의 모든 상처와 속살까지는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수사경찰의 분석이다. (서울=연합뉴스) 정윤섭.안희기자 jamin7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