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외국계 은행원이 재벌 2,3세 사교모임에 접근해 수백억원대의 사기행각을 벌인 단서를 포착, 검찰이 전면 수사에 나섰다. 서울지검 조사부(소병철 부장검사)는 27일 안전한 정기예금 상품에 예치해 주겠다며 S기업 대주주의 아들 이모씨(35)로부터 5백25억원을 건네받아 가로챈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로 전직 외국계 은행 직원 최모씨(37ㆍ무직)를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지난 99년 7월부터 호주계 은행 서울지점에 근무했던 최씨는 재작년 12월 초순부터 올 4월24일까지 이씨에게 '다른 은행보다 금리가 높고 특별우대금리를 주는 정기예금 상품이 있다'고 속여 모두 5백25억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다. 조사 결과 최씨는 이씨로부터 정기예금 예치금을 받을 때마다 서울 중구 무교동의 한 인쇄업체에서 위조해둔 정기예금 증서와 약속어음을 건네주는 방법으로 이씨를 속여온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이씨가 최씨에게 지금까지 건네준 금액이 5백25억원이지만 허위 예금증서상 만기가 도래한 부분에 대해서는 최씨가 다시 새로운 정기예금에 가입한 것처럼 속였기 때문에 재예치금 등을 합해 투자액이 모두 15차례 7백45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구체적인 사용처와 돈의 행방을 캐고 있다. 최씨는 검찰에서 범행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피해자에게 더 많은 이익을 주기 위해 피해자 몰래 다른 곳에 투자했다', '이 돈을 홍콩 펀드매니저인 S씨에게 투자했는데 S씨가 도주해 버렸다'고 주장하며 돈의 용처 및 소재처는 함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특히 최씨 구속이후 피해를 당한 관련 인사들이나 변호인들이 검찰을 직접 찾아오거나 전화 문의를 통해 '나도 피해를 봤다. 최씨가 잡힌 게 맞냐'며 피해사례를 속속 진정한 사실에 주목, 피해 사례가 최고 10건 이상에 이를 것으로 보고 집중 조사 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황당한 수법처럼 보이지만 은행 사무실에서 버젓이 예금을 받는데야 속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피해를 당한 이씨는 부동산임대 및 건설,영상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S기업의 대주주이자 S학원 이사장인 이모씨(64)의 아들로서 아버지 소유의 H사 매각대금 등 S기업과 집안의 재산 및 자금을 관리하다 사기 피해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