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초 코스닥에 등록된 엔터기술의 이경호 대표(44)는 세계 각국의 유행 음악과 음악적 정서를 꿰뚫고 있는 '음악CEO'다. 그는 지난 98년 마이크처럼 간편하게 생긴 휴대용 노래반주기'매직싱'을 개발,세계 22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마이크 안에 장착된 칩에 수천곡의 노래가 담겨 있어 텔레비전이나 오디오에 연결하면 즉석 노래방이 된다. 매출(지난해 2백81억원)의 95% 이상을 해외 에서 올릴 정도로 해외에 더 많이 알려진 그는 이제 코스닥업체 사장으로서 성공한 기업인이 됐다. 하지만 오늘이 있기까지 이 사장에게는 남모르는 어려움이 많았다. 친구들이 졸업할 나이가 돼서야 한성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그는 졸업후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취직이 어려워 전자방향제 칩을 만드는 작은 회사에 들어갔다. 직원이 5명에 불과해 업무 전반을 맡아 일을 배우기에는 더없이 좋았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회사가 문을 닫아 실업자로 전락하자 94년 적금 6백50만원을 깨고 주위에서 빌린 돈 5천만원으로 지금의 노래반주기 회사를 차렸다. 이 분야에 대한 관심도 많았고,당시 노래방 붐이 일고 있어 뭔가 되겠다는 확신이 있었다. 기술자 4명과 함께 밤낮으로 연구개발에 매달렸다. 그러나 시장은 만만치 않았다. 수입은 들어오지 않고 빚은 늘어만 갔다. 돈 얘기를 하자 주윗사람들은 그의 전화조차 받으려 하지 않았다. "너무 힘들어 96년에는 사업을 그만둘 생각을 했습니다.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빚만 남으니 성공할 때까지 해보자고 결심했죠." 98년 제품이 출시됐다. 그러나 주문은 기대에 못미쳤다. 그나마 제품을 외주생산하다보니 이윤은 거의 남지 않았다. 다행히 기술력을 인정받아 이듬해 투자유치에 성공한그는 빚을 갚는 대신 자체 생산공장을 지었다. 그리고 해외시장 개척에 나섰다. 광고비를 아끼려고 주말마다 미 캘리포니아주의 한 관광지에서 열리는 벼룩시장에 부스를 마련,'약장수 마케팅'을 펼쳤다. 고객들이 직접 노래를 부르게 해 흥미를 자극하자 처음엔 외면하던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매직싱'부스는 1만5천여개 벼룩시장 부스중 가장 인기 있는 곳이 됐다. 소문이 퍼지면서 제품 구입문의와 대리점 희망자가 잇따랐다. 크리스마스 같은 성수기에는 '매직싱'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였다. 미국인들의 파티문화를 겨냥한 이 대표의 전략이 맞아떨어지면서 엔터기술은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2000년부터는 품질검사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 산요에 제품 공급을 시작,지난해에는 5만대를 선적했다. "벤처는 단일품목을 업그레이드해가며 승부하는 게 정도라고 생각합니다.앞으로 음원 핵심칩이나 전자학습기 등을 개발하고,장기적으로는 콘텐츠 공급 회사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20일가량은 해외에서 시장개척 활동을 하는 이 대표는 피곤이 쌓일 때나 일이 잘 풀릴 때나 자신의 애창곡인 '아름다운 사람(서유석 노래)'을 흥얼거린다. 최규술 기자 kyus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