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3월 서울 이태원에서 발생한 미국인 여대생 피살사건과 관련, 미국이 외교채널 등을 통해 우리측에 피의자 신병인도 등 수사 협조 문제를 제안하고 자국민 피의자의 자백내용을 먼저 통보해 주는 등 이례적인 행보를 보인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또한 알렌 스펙터 미 상원 법사위원이 사건 발생 이후 방한, 김대중 전대통령에게 조속한 사건 해결을 요청한 사실도 드러났다. 17일 살인 혐의로 기소돼 1심 무죄판결을 받았던 미국인 여대생 켄지 스나이더(21)씨 변론을 맡았던 엄상익 변호사가 공개한 미국 FBI 수사보고서에 따르면 알렌스펙터 미국 상원 법사위원이 방한기간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사건해결을 촉구했던것으로 나타났다. 2002년 2월7일에 작성된 수사보고서는 이번 사건에 대한 수사재개 배경을 설명하면서 피해자 가족의 탄원이 대대적으로 현지 언론에 보도되고 미국 상원에 접수됨에 따라 스펙터 상원의원이 한국을 방문하는 기간 김 전 대통령을 면담, 이번 사건에 대한 관심을 전달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스펙터 의원이 김 전 대통령에게 이 사건을 언급한 직후 주한 미대사관 주재관으로 파견됐던 미 FBI 한국지부장과 주한미군 범죄수사대(CID) 요원이 미국으로 건너가 스나이더씨에 대한 조사를 벌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FBI 한 관계자는 이후 스나이더씨에 대한 조사 내용을 우리 검찰에 일부 통보하고 신병 인도 등 협조 의사를 전달하며 수사를 사실상 의뢰한 것으로 보인다고 엄변호사가 전했다. 특히 엄 변호사가 공개한 스나이더씨의 미국 변호인단 의견서에는 스펙터 상원의원 등 미국 당국자들이 한국 정부에서 이 사건을 해결해주도록 `압력(strong pressure)'을 행사했다는 내용이 언급돼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엄 변호사는 "미국 정부가 이번 사건에 관심을 갖고 한국 수사기관이 스나이더씨를 전혀 용의자로 주목하지 못한 상태에서 외교채널 등을 통해 사건해결을 촉구하고 스나이더씨에 대한 자백내용을 통보해준 것이나 외교관으로 파견된 수사관을 본국을 불러 수사를 맡긴 점 등은 이례적인 차원을 넘어 석연치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당시 FBI 한국지부장은 내게 `한국에서 촛불시위가 일어나고 있는데 미국이 자국 군인들만 위하는 게 아니라 자국민도 잘못한 것이 있으면 한국에 죄인으로넘길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고 언급한 사실이 있다"고 밝혀 미군 범죄로인한 반미감정을 희석시키기 위한 정치적 배경이 있지 않느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스나이더씨에 대한 신병인도 절차를 맡았던 법무부 관계자는 그러나 "공식적인범죄인 인도절차를 통해 미국 법원의 결정에 따라 스나이더씨에 대한 신병을 넘겨받아 조사를 벌인 결과 자백 내용의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해 기소한 것이며 정치적 배경 운운은 소설같은 얘기"라며 일축했다. (서울=연합뉴스) 조계창 기자 phillife@yna.co.kr